1. 司馬遷의 인생
2. 그의 인생을 180°바꿔버린 사건 - ‘이릉(李陵)의 사건’
3. 왜 宮刑을 당하면서 까지 『史記』를 고집했는가.
4. ‘報任少卿書’를 통해 본 사마천의 인간적 고뇌.
5. 내가 본 인간 사마천.
나오는 글
우리에게 알고 있는 역사가를 꼽으라고 하면 여러 역사가의 이름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중 사마천의 이름도 대개 끼어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대대로 사관을 지냈으며, 희대의 명 역사서인 『史記』를 저술한 사마천. 그토록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에게도 한 맺힌 피눈물이 있었다. 『사기』를 위해 자신을 버린 사마천이지만 그가 차마 남에게 보이지 못한 채 흘린 눈물의 흔적은 여러 곳에서 찾아낼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역사가로서가 아닌 인간 사마천을 들여다 보자.
1. 司馬遷의 인생
사마천(司馬遷)은 기원전 145년 용문에서 태사령 천문(天文), 역법(曆法), 역사(歷史) 등의 기록과 저술을 맡았언 관직.
사마담(司馬談)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많은 곳을 여행하며 학식을 쌓아갔다. 그러던 중 기원전 110년 낭중이라는 벼슬을 하게 된다.
그 해 무제가 한(漢) 왕실의 封禪禮를 행하는데, 사마담이 주남에 머무르는 바람에 이 의식에 참여하지를 못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분노하여 앓아 눕게 된다. 사마천이 사명을 마치고 돌아와 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후였다. 사마담이 눈물을 흘리며 남긴 유언에 사마천은 유지를 받아 이룰 것을 다짐하게 된다.
사마담 사후 3년 만에 사마천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太史令이 되었다. 태사령의 직분을 다하며, 한편으론 여러 서적을 탐독하던 그는 태초(太初) 원년(기원전 140년)부터 사기를 쓰기 시작한다.
사마천이 태사령이 된 지 8년이 지난 해, 그는 ‘이릉(李陵)의 사건’에 연루되어 임금의 노여움을 사 사형수의 신세가 되고 만다. 이때 사형을 피하는 대신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황금 3만 8천근을 내면 비록 서인으로 떨어지나 사형만은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재산이 없었으며 주위 누구도 그를 위해 나서주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한가지 방법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궁형(宮刑)이었다. 그 시대에 궁형이라 함은 매우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으나
ㄴ. 하야기다 신노스케 지음/심경호 옮김,『인간 사마천』, 도서출판 강, 1997
ㄷ. 사마천 지음/김원중 옮김, 『사기열전 下』, 을유문화사, 1999
ㄹ. 사마천 지음/정범진 외 옮김, 『사마천 사기열전 下』, 까치, 1995
ㅁ. 이윤화 교수님 홈페이지에 올려진 ‘報任少卿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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