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
ⅰ.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
ⅱ.플라톤과의 학문적 경향의 차이
Ⅲ. 자연과학분야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 학문
ⅰ.천문학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
ⅱ.물리학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
ⅲ.천문학과 역학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
ⅳ.생물학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
ⅴ.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탐구방법론
Ⅳ.결론
스타기라 출신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고대 그리스에서 서양 근대에 이르기까지 근 2천년동안 유럽인들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가 끼친 영향은 그의 사상체계만큼 그 범위가 넓고 깊다.
Ⅱ.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
ⅰ.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
플라톤의 제자로 고대과학의 체계를 확립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32 BC)는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아미타스3세 시대에 궁정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의 의학은 가문의 전통에 의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어렸을 때부터 의학의 기초에 대해 아버지에게 배웠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가 후에 생물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것도 어렸을 때부터 의학에 접할 수 있었던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동료의 자식을 친자식처럼 돌보던 의사들의 전통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버지의 동료에 의해 양육되었고, 17세기가 되었을 때 아테네로 보내져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20년 동안 플라톤 밑에서 공부를 했다.
플라톤이 죽은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아를 떠나 소아시아 아수스지방의 새로운 아카데미아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동료들과 철학연구 모임도 만들며 지냈다. 한때 그는 마케도니아의 필립 왕의 부름을 받고 알렉산더 왕자의 가정교사를 하기도 했으나, 필립 왕이 죽고 알렉산더가 즉위하자 소아시아의 스타지라에 돌아와 50세까지 머물렀다. 그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돌아와 아테네의 교외에 리케이온(Lykeion,335 BC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 교외에 세운 학원)을 창설했는데, 이 학원에서는 강의의 일부를 산책을 하면서 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소요학파(Peripatetic School)라는 칭호를 얻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한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인들의 적대적인 태도로 인해 다기 자신의 학원을 포기하고 아테네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ⅱ.플라톤과의 학문적 경향의 차이
플라톤이 형이상학과 수학을 중시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차츰 경험과 관찰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그의 생물학 연구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플라톤이 세웠던 아카데미아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웠던 리케
자연과학의 역사, 곽영직·이문남, 북스힐
과학이야기, 곽영직, 사민서각
역사속의 과학, 김영식, 창작과 비평사
과학의 역사와 미래, 차문희외 공저, 강원대학교 출판부
과학철학의 역사, 존 로지,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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