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드스타인의 중요성
2.최고의 파트너가 되기까지
3.워터게이트 탐사보도와 딥스로트
4.워터게이트 이후 번스타인의 행보
5.우드워드의 기자로서의 성공
6.딥스로트 폭로
7.영원히 기억 될 두 기자
3. 워터게이트 사건 탐사보도와 딥스로트
3-1. 워터게이트 사건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은 1972년부터 1975년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하는 말로서,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정치 스캔들이다. 사건의 이름은 당시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Headquarters)가 있던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유래한다. 처음 닉슨과 백악관 측은 ‘침입사건과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1974년 8월, "스모킹 건"이라 불리는 테이프가 공개됨에 따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측근들도 그를 떠나게 된다. 닉슨은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지 4일 뒤인 1974년 8월 9일, 대통령직을 사퇴했다. 이로써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 사건은 ‘①도청사건 적발 ②닉슨 측의 사건 은폐 시도 ③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 ④대통령 사임’으로 전개되었으며, 하나의 사건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정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매스미디어가 정치가의 활동에 대해 보고하는 것이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유력한 하원세입위원장 윌버 밀즈가 닉슨 사퇴후 몇 개월 후 음주 운전 중 사고를 일으켰을 때 미디어는 예전이라면 이것과 비슷한 일에 대해선 언급하지도 않았으나, 사건은 보도되어 밀즈는 곧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더해서 리포터가 중요한 정치가의 개인 행위를 밝히는 것에도 예전에 비해 정력적으로 활동하게 되어,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보고하게 되었다. 윈드워드 및 번스타인을 목표로 하는 리포터의 새로운 세대는 조사보도와 정치가와 연관된 활동에 관련된 공표도 하면서 증가한 금융정보에 대해서 새로운 스캔들을 찾아내 보도하게 되었다.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 검색어=‘워터게이트’.의 내용을 재구성.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동료인 알프레드 루이스의 침입사건 보도 기사를 보고 독자적인 취재를 시작한다. 루이스의 기사는 “경찰이 도청용의자 5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는 짤막한 사실을 경찰을 주취재원으로 해 보도했는데,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이에 관심을 보이며 처음으로 팀을 이뤄 기사를 작성하게 된다. 루이스의 기사의 제목과 주 내용은 아래와 같다. 보고서에서 인용한 기사의 제목은 "http://www.washingtonpost.com/wp-srv/politics/special/watergate/index.html".이하 내용을 참고했으며, 주 내용 선택 및 요약/번역은 발표자들이 담당.
5 Held in Plot to Bug Democrats' Office Here
By Alfred E. Lewis // Washington Post Staff Writer Sunday, June 18, 1972
“새벽 2시 반, 워터게이트호텔과 사무단지에 있는 민주당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하려 한 다섯 명이 체포됐다.”
이튿날, 독자적인 취재를 시작한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경찰을 주 취재원으로 해 그 신문내용을 바탕으로 첫 특종을 터뜨리는데 그 기사의 제목과 주 내용은 아래와 같다.
GOP Security Aide Among Five Arrested in Bugging Affair
By Bob Woodward and Carl Bernstein // Washington Post Staff Writers Monday, June 19, 1972
“민주당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지난 토요일 새벽에 체포된 다섯 중 한 명은 대통령 Nixon의 재선위원회의 안보담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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