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균전제의 기원
1) 중국적 전통에 내재된 균전사상
2) 유목민족적 전통에 내재된 균전사상
3. 균전제의 제도적 성립 배경
1) 정복 왕조적 성격
2) 호족(豪族)의 대토지소유
4. 균전제의 제도적 내용과 그 변천
1) 북위(北魏)시기
2) 북제(北齊)ㆍ북주(北周)ㆍ수(隋)ㆍ당(唐) 시기
5. 균전제의 시행과 한계
1) 돈황호적(敦煌戶籍)의 연구와 균전제 미실시론
2) 토로번문서(吐魯番文書)의 연구와 균전제 실시론
6. 조․용․조, 부병제와의 관계
1) 조용조(租庸調)
2) 부병제(府兵制)
7. 균전제의 붕괴
8. 맺음말
이러한 균전제는 이후 계속되는 연구와 함께 균전제의 실질적인 시행상황, 제도를 잉태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여건, 제도적 내용 등에 있어서 학자들 간의 통일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이설(異說)들이 분분하게 제기되어, 많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여하튼 균전제의 법제적 기본 원칙은 국가가 일정면적의 토지를 정령(丁齡)의 백성에게 분배하여 노령(老齡)에 환수하는 것이다. 백성을 토지에 결속시켜 국가의 지배하에 두려는 호족 제어책으로서, 한편 국가의 재정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서 이 제도의 현실적 목적은 호족의 대토지사유의 억제와 농민의 생활안정, 조용조(租庸調)에 의한 세수(稅收) 확보, 그리고 토지를 받는 균전농민에게 부병의 의무를 강요함으로써 군사문제까지 해결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균전제에서는 전제군주가 토지와 인민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왜냐하면 이 제도의 내용이나 운영상의 여러 문제를 고찰할 때에 균전농민이 짊어진 조용조의 부담과 부병의 의무는 사실상 일반농민으로는 지나치게 무거운 부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균전제와 조용조의 세제(稅制) 그리고 부병제는 분리시킬 수 없는 삼각관계를 유지하면서 전개되어 나갔다고 보아야 한다.
누노메 조후 외,『중국의 역사-수당오대』, 혜안, 2001.
등선진징,『아시아역사와 문화2』, 신서원, 2002.
호리도시 가즈,「균전제와 조용조제의 전개」,『세미나 수당오대사』, 서경출판사, 2005.
김성한, 『중국토지제도사연구-중세의 균전제』, 신서원, 1998
백윤목, 「당 균전제하의 급전에 관한 고찰」, 영남대석사학위논문, 1981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