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상] 일본의 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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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사상] 일본의 난학자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일본의 난학자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 1733-1817)
오오츠키 켄타쿠(大槻玄澤, 1757-1827)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4-1901)

본문내용
일본의 난학자

蘭學(난학)는 17세기초 일본과 네덜란드의 교섭이 개시된 이래 히라도와 나가사키에 네덜란드어를 해독할 수 있는 일본인들이 '오란다 통사'[阿蘭陀通詞]라는 직업적인 통역관 겸 상무관(商務官)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들은 네덜란드 상관을 출입하는 가운데 네덜란드 의사를 통해 서구의학을 접하면서 그 기술과 지식을 익히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아직 네덜란드 의사의 시술을 모방하거나 설명을 듣고 지식을 축적하는 단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18세기를 전후해서 에도[江戶]를 중심으로 서구의 학문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니시카와 조켄[西川如見]이 〈화이통상고 夷通商考〉를 저술하여 세계지리를 소개하는 한편, 저명한 유학자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서구의 풍속 역사 지리 등을 기록한 〈채람이언 采覽異言〉 〈서양기문 西洋紀聞〉을 저술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의 제8대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가 정책적인 뒷받침을 해줌으로써 더욱 진전되었다. 그 배경에는 상품경제의 발달과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실용적 과학기술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는 사정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누마 시기[田沼時期 : 1768경~86경]에 한층 활발해졌는데, 그 기념비적인 성과가 〈가이타이신쇼〉의 간행이었다. 이 책은 독일인이 저술한 해부학 책의 네덜란드 번역본을 4년에 걸쳐 재번역한 것으로, 서양 의학에 대한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소개이자 연구로 난학 발전에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가이타이신쇼〉의 간행 이후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든 난학는 크게 세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의학, 또는 이와 밀접한 본초학(本草學)이며, 둘째는 천문역학, 세째가 세계지리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