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枕上日記
3. 다중 프레임 : 의 시공간적 구축
4. 육체화된 글쓰기, 몽상하는 영화
제기랄, 이 가증스런 허상들,
내가 진정으로 써보고자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안 쓰는 것이다.
- B.S. 존슨, 「알버트 안젤로」
물론, B.S. 존슨처럼 현대의 모든 작가들이 글쓰기에 대한 지독한 자괴감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허구가 사람들을 매혹시킨 태고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허구의 창조와 허구의 소비는 아직까지도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픽션, 그리고 글쓰기는 분명히 또다른 지평위에 서 있다. 허구, 허구적 글쓰기는 더 이상 세계의 완벽한 재현이 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글쓰기가 제공하는 것은 단지 또다른 허구의 세계일 뿐이라는 점은 20세기 모더니스트들이 가진 공통분모가 되었다. 그리고 모더니스트들은 끊임없이 이 허구의 세계와 허구의 시스템을 분열시키고 해체하려고 갖은 노력을 해왔다. 그 결과는 그들의 도발적인 기획이 다양한 스타일의 혼재, 혹은 또다른 픽션의 영역이라는 또다른 막다른 골목이었다고 할 지언정 말이다.
모더니스트들이 가진 글쓰기의 강박증은 작가나 독자뿐만 아니라 주석자들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모더니스트들이 보여준 다양한 기획과 생산들을 "역사적으로 혼재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일련의 양식들로 규정되어 질 수 있다"고 보는 데이비드 보드웰 같은 주석가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결국 마지막 발언권은 주석가가 가지고 있다는 나보코프의 말은 단순한 빈정거림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모더니즘에 대한 보드웰의 견해에 모든 주석가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실비아 하비의 말을 빌자면, 모더니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의 이러한 오류는 모더니즘 작품들이 가진 텍스트의 급진성을 텍스트적 장치, 동시대의 사회적 현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독자의 삼박자를 기반으로 규정하는기 보다는, 단지 스타일적 장치들에 의해 규정하려는 데에서 유래한다. (아무리 보드웰이 자신의 방법론을 통시적 접근에 의한 것이라고 변명할 지언정말이다) 분명히, 모더니즘 텍스트가 가지는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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