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의 북학의를 읽고나서
2. 내용
3. 인식
남인 실학자들이 전통적 유교 경전에 대한 재해석을 새로운 사상 형성의 중요한 통로로 삼았음에 비해, 북학파는 유교 경전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경전에 주석을 다는 것과 같은 지루한 작업을 기피하고 소설이나 기행문 등의 문학작품을 사상 표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박지원이 소설체 문장을 유포시켰다고 하여 국왕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경향성의 연장이었으며, 그런 만큼 이들은 사상 내용에서도 좀 더 혁신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인 실학자들이 토지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제도의 개혁에 치중했던 반면, 북학파는 낡은 생산수단의 개량을 통해 생산력을 제고시킴으로써 사회문화를 일신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것은 남인들이 대체로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어 그것을 만회하려는 의지가 강했지만, 북학파는 비록 당사자들이 직접 권력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집권 노릇을 붕당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것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한 이들의 서울 생활 역시 이들로 하여금 낡은 문화와 새로운 문화의 차이에 민감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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