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서의 신라 건국편 해석
어거스틴의 해석학에 근거하여 삼국사기를 읽어내는데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다. 첫 번째는 자구적 의미에 우선을 두어 기록된 사실들을 정확한 맥락으로 복원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편협한 법리주의와 위험한 정치주의를 벗어나 애덕에 부합하는 한 진리로부터 이탈된 것이 아니라는 여유를 갖는 일이다.
삼국사기의 신라건국에 대한 부분에 대한 서술은 다음과 같다.
시조는 성이 박씨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 효선제 원년 4월 병진날 에 즉위하여 왕호를 거서간이라 하고, 그때 나이는 13세, 국호는 서라벌이라 하였다.
일찍이 조선의 유민들이 이곳에 와서 산곡간에 헤어져 여섯 촌락을 이루었다. 첫째는 알천의 양산촌, 둘째는 돌산의 고허촌, 셋째는 취산의 진지촌 , 넷째는 무산의 대수촌, 다섯째는 금산의 가리촌, 여섯째는 명활산의 고야촌이란 것이니, 이것이 진한의 6부이었다. 고허촌장인 소벌공이 (하루는) 양산 밑 나정 곁에 있는 숲 사이를 바라본즉,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는지라, 가 보니 말은 간데없고, 다만 있는 것은 큰 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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