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북방계통론 검토
3. 가죽과 직물의 요대
4. 대구와 교구
5. 과대와 패식
6. 닫는 글
요대와 대식에 대하여 알아보고 이를 고대 한국의 것과 비교.
북방지역에서 출토된 대식의 가장 이른 연대의 것 : 중국의 춘추시대와
전국 중후기에 속하는 내몽고에 위치한 선화(宣化), 장가구(張家口),
강보(康保), 양원(陽原), 수원(綬遠), 승덕(承德), 준격이기(准格爾旗),
포두(包頭)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교구 등의 대식
춘추시대의 유적에서는 비교적 단순한 모습의 교구 등 출토,
전국 중후기의 유적에서는 보다 발달된 비교적 화려한 모습의 교구 등 출토.
같은 시기, 신강(新疆) 초원 지역에서는 이 같은 대식이 출현하지 않음.
→ 서기 전 3세기경 혹은 보다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고대 석인들이
여러 개 발견 됨.
전국시대에는 북방민족의 복식을 입으며 대구로 두터운 대를 허리에 꼭
매거나 가는 끈으로 묶음.
진,한시대 남자들은 포복에 가는 폭의 요대를 함.
*곡거심의 : 한대에 남녀 모두 자주 입었던 의복.
남자는 허리보다 아랫부분에 좁은 폭의 요대를 두르고,
여자는 허리의 앞부분에서 이를 묶으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
*요금심의 : 한대에 여자들이 입은 포복.
가는 폭의 요대를 허리 아랫부분의 앞에서 묶음 방식으로 처리.
양한대(兩漢代)에는 선진의 대대가 복식의 주축을 이루고, 북방민족의
대를 검대(劍帶) 등으로 하기도 함.
북방지역은 양진 남북조시대에 와서야 대구가 등장하는데, 대부분 머리 부분이
동물 모습인데 출토량이 적은 편임.
이는 이런 양식의 대구가 오래 쓰이지 않았음을 알려줌.
만주의 요령성, 흑룡강성, 길림성과 한반도 지역 여러 유적에서는 표면에
무늬나 조각이 없는 긴 고리 모양 대구가 여럿 출토되는데, 이는 이러한 형태가
고조선 대구로 오래 사용되었음을 알게 해줌.
이런 고조선 대구는 고조선 붕괴 이후 여러 나라로 이어짐.
고구려 초기 유적인 요령성 심양시에 위치한 고묘등에서 긴 고리 모양의
동대구가 출토됨.
동부여 유적의 경우, 동한시대에 해당하는 길림성 유수현 노하심촌에 위치한
고묘 등에서도 이러한 대구가 출토.
☞ 이는 고조선 붕괴 이후에도 두 나라가 고조선의 대구를 계승했음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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