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 론
1. 프랑스의 제3공화정
2. 드레퓌스 사건
(1) 드레퓌스 사건
(2) 드레퓌스 사건의 의의
3. 제 1차대전 직전까지의 좌파정당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의 상실로 민족 정서의 손상이 가시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쟁은 워털루 전쟁 이후로 전면전을 피하면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는 유럽 국가들의 국제관계 속에 폐해를 가져왔다. 새롭게 통일된 독일은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인 면에서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주요 국가들 사이의 세력균형이 깨지고 있었다. 1879년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연합한 2국 동맹체제에 1882년 이탈리아가 참여함으로써 3국 동맹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여러 가지 국내 사건들로 인해 다른 열강들 속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1890년대에는 전제주의 러시아와 친분관계가 영국까지 확대되면서 1905년에 영국, 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었다. 이 시기의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은 독일의 군국주의가 강화될수록 긴장과 복수심을 부추겼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14년 직전의 몇 년 동안 유럽의 정세는 전쟁 직전의 긴장감을 감돌았다.
프랑스에서는 민족적 복수의 요구가 번지기 시작했다. 대중 작가 폴 데룰레드는 정치적 압력 집단이자 거리의 시민군으로 행동했던 애국자 연맹을 조직하였다. 1899년 데룰레드는 펠릭스 포르 대통령의 장례식 기간 중 쿠데타를 일으키려고까지 하였다. 유능한 언론인 샤를 모라스는 정치가들이 다루기를 꺼려했던 원외 우익 대중주의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새로운 애국주의적 우파는 프로테탄트, 유대인, 프리메이슨과 외국인이 좌지우지하는 부패한 중앙정치에 대한 국수주의적인 비판을 가했다.
1892년의 파나마 스캔들에는 수많은 공화파 의원들이 연루되었는데, 이들은 페르디낭 드 레셉스 소유인 파나마 회장의 사업상 부패를 눈감아 주는 조건으로 뇌물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리메이슨의 외국인들과 유대인에 대한 국민의 적대감은 극을 달하게 되고 또한 이러한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낸 공화주의자들은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이에 반유대인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하면서 프랑스사회는 격동 속으로 휩싸이게 된다.
이 과제물에서는 그러한 프랑스의 민주주의의 역사적 단계의 한 부분인 드레퓌스 사건에서 제 1차 세계대전 사이의 좌파정당의 성장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로저 프라이스,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 개마고원, 2001
3. 콜린 존슨,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시공사, 2001
4. 다니엘 리비에르, 「프랑스의 역사」, 까치, 1998
5. 이주영 외, 「서양현대사」, 삼지원, 1994
6. 서정복, 「프랑스사」, 양서원, 1994
7. 앙드레 모로아, 「프랑스사」, 기린원, 1985
드레퓌스와 좌파정당.. 제 3공화정에 대해 아주 자세하면서도 정리가 잘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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