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서론
Ⅱ.본론
1.전시체제와 국가의 모성통제
1) 출산 통제와 개입
2) 양육정책
2. 모성정책
1) 모자보호법
2) 어머니 강좌 개설
3) 가정교육지도요항
4) ‘어머니 날’ 재정
3. 여성들의 전쟁협력
1) 모성의 조직화
2) 동원되는 모성
Ⅲ.결론
일본이 메이지 이후 정책적으로 ‘모성’을 강조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모성’은 국가가 국민에게 철저하게 침투시키고자 했던 ‘봉사와 희생’의 상징으로 유효했다. 둘째, 출정병사와 가정에 대해 ‘모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직업이나 결혼유무, 계층, 신앙을 초월해 모성은 모든 여성에게 공통된 것으로 여성을 고무시킬 수 있는 원초적 원리로 작용했다. 셋째, 국민의 ‘거국일치’를 위한 심리적 기반강화를 위해 유효했기 때문에 ‘모성’을 국민들 간에 관계에 개입시켜 ‘모성’이 가지는 ‘국가를 위한 헌신적 사랑과 희생’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유도해냈다. 또한 ‘모성’이 가지는 ‘혈족의식’을 유도하여 ‘거국일치’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저항을 봉쇄함과 동시에 ‘어머니’라는 상징에 의해 사람들 사이에 잠재해 있는 평화에 대한 염원을 자극해 전쟁에 수반되는 피비린내를 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伊藤セツ외 2(저), 장미화(역),『여성학』,동문서원, 1992, p.125
이 당시 일본의 모성정책은 단순히 모성을 강조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천황과 국체관념에 결부시킴으로써 모성을 국가적으로 여성을 통합하는 원리로 이용하고자 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일본에 있어서 아시아·태평양 전쟁기에 여성의 전쟁 동원을 위해 어머니들에게 어떠한 모성이데올로기를 형성 유포 시켰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어머니 역할을 요구하였는지 이 시기의 일본 정부의 모성정책을 통해 살펴보자.
1) 모자보호법
여성사총연구회,『일본여성생활사제4권』,동경:동경대학출판사, 1990
이등삼 외 2(저), 장미화(역),『여성학』,동문서원, 1999
김경옥,「총력전체제기 일본의 여성노동정책과 인구정책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숙명여자대학교』, 1호, 2009
권숙인 , 「일본제국시대의 여성의 지위」,『한국문화인류학회』, 1호, 1997
김경주 ,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의 모성에 관한 연구 :여성동원 수단으로써의 모성의 관점에서」,『숙명여자대학교』, 1호, 2009
장미화,「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여성동원정책에 관한 연구」,『한양대학교』,1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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