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해석
2.1.의 기존 해석 고찰
2.2.의 배경 해석
2.2.1.안축의 재해석
2.2.2.시어의 재해석
3.의 의미와 사대부의 비전
당시 안축은 원나라에서 요양로 개주판관에 임명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충숙왕에게 충애를 받아 고려의 벼슬을 받고 귀국했다. 왕명으로 여러 벼슬을 거친 후 강원도 조무사로 파견되었는데, 이때 『關東瓦注』라는 문집을 남겼다. 후에 파면 당하나 다시 복직 후 이제현 등과 『編年綱目』을 개찬하며, 실록을 편찬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그의 생애는 파직과 복직이 되풀이 되는 불안정한 관직 생활의 연속이었는데, 시종 관인으로서의 일생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화려한 공직자의 그것에서는 이탈되지 않았다. 이러한 생애적 특징은 그의 漢詩는 물론이고, 《경기체가》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반영되는 이미지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경기체가의 당찬 의지와 자연 경관의 화려함과는 달리 한시에서는 인생의 굴곡과 삶의 허무함, 민초의 고통에 관한 내용이 많다. 이는 당대 현실의 혼란과 허무를 반영한 것으로, 그가 활동하던 고려말은 중앙집권적 통치체계가 흔들리고 이민족의 빈번한 침략과 지배간섭이 있던 시기였다. 때문에 이 시기는 문학사적으로도 전환점이 되는데, 지배계층이 대립하고, 결국 교체되어가는 과정속에서 안축은 그 흐름을 몸소 경험하고 있던 것이다.
국가와 사회에의 연대감을 사상의 바탕으로 두고 있던 신흥사대부들은 문인의 사회적 위치를 염두하여 한시를 창작하였다. 이는 자신들의 성장 배경이며 경제적 기반인 농촌에 대한 현실 감각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의 회화적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보다는 자연에 냉담한채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 특히 농민에게 강한 흥미를 나타낼 따름이다. 그들의 시는 풍속시화하면서 농민시, 사회시로 발전하였고, 원문: 島在歙谷縣南。去縣十五里。島有石。國島叢石之支裔也。人所尋翫者。蓋穿其腹耳。
小島出洪波。橫穿作通穴。南北水互連。相激碎飛雪。滿島石狀奇。條條均削截。橫臥若積籌。倒垂如裹鐵。長者束而立。短者散以列。陰崖或成窪。驚浪常舂齧。穴中少廣平。坐席無地設。苔石滑而側。腥潤不淸潔。海風忽打頭。須臾心不悅。望岸促行舟。舟人力鼓枻。行行白沙渚。始喜免魚鼈。以島比叢石。奚止十倍劣。觀彼此可遺。悔余信人說。使賓遠聞名。來往無時節。豈惟舟楫勞。亦浚民膏血。霹靂不摧殘。此害何時絶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나아가 사대부 리얼리즘이라 할
「텅 비니 만가지 경지가 다 담기네」 (『소동파시선집』.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2010)
『고려시대 시가의 탐색』 (김상철. 경인문화사. 2004)
「두보」 (『중국한시인선2』 석필. 2001)
『경기체가연구』 (이기중 外 5명. 태학사. 1997)
『한국 한림시 주석』 (김창규. 국학자료원. 1996)
*참고논문
하승정 「투고논문 : 안축(安軸) 시의 표현 양식과 미적 특질」 (동방한문학회 2008)
김은정 「안축 한시에 나타난 사대부 의식의 제층위」 (한국한시학회 1996)
변유유 「일반논문 : 에 미친 송사의 영향」 (한민족어문학회 2009)
유호진 「高麗 後期 士大夫 漢詩에 나타난 精神志向에 대한 연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2003)
원주용 「謹齋安軸詩文에 나타난 新意의 樣相考察」 (동방한문학회 2010)
박일용 「논문: 경기체가의 장르적 성격과 그 변화」 (일지사 1987)
변종현 「당,송시가 고려조 한시(漢詩)에 미친 영향」 (동방한문학회 2004)
신영명 「경기체가의 갈래적 성격과 안축의 자연관」 (우리어문학회 1995)
김기탁 「경기체가의 성격고찰 -"...경 긔 엇더후니잇고 "의 결사를 중심하여-」 (한민족어문학회1981)
변종현 「고려 중기 한시의 송풍적 양상」 (근역한문학회 1993)
한창훈 「근제 안축 ( 1282 - 1348 ) 論」 (우리어문학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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