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대배경 및 도연명의 생애
2.도연명의 사상 및 작품관
3.작품소개 (시)
4.작품소개 (시 외)
5.후세의 미친 영향 및 평가
도연명은 몇 차례 벼슬길에 나섰으나, 몰락한 사족 출신으로
기회를얻을 수 없었고, 곧은 성격 때문에 혼탁한 세상에 섞이
지 않음
→ 전원으로 물러나 바른 길을 고뇌하며 시문으로 남김
한말(漢末)과 위진(魏晉) 후, 지식인들이 유가사상에 회의를 느낌
개인적 자유를 중시하는 도가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됨
① 현학(玄學)의 확립과 청담(淸談)의 유행
② 유선시(遊仙詩)와 현언시(玄言詩)의 등장
③ 음주와 풍조의 유행
④ 방탕한 기풍(氣風)의 성행
⑤고답취미(高踏趣味)를 추구
그해말에 심양군 장관의 직속인 독우(督郵)가 순찰을 온다고 하여 밑의 관료가 "필히 의관을 정제하고 맞이 하십시오" 하고 진언했더니, 도연명은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손가"라고 말한 뒤 그날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 宋書 》隱逸傳-
“취임해서 어느 정도 되자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벼가 익거든 빠져나가려고 생각하던 차에 누이의 부음이 들려오자 조금도 참을 수 없게 되어 스스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왔다.”
-《 歸去來辭 》 宋書 序-
②곤궁과 영달
도연명의 시문에서 자주 자신의 빈한함을 언급하였으나 곤궁과 영달
에 대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처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음
공자의 ‘곤궁에 굳센 절개’, 노자의 ‘지족’, 장자의 ‘곤궁과 영달의 초월’
등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인생철학으로 삼음
▶ ‘귀거래사’와 함께 도연명이 장기적으로 전원생활을 하면서 순박한 농부들의 생활을 찬미하고 벼슬에 대해 비난한 작품
▶ 총 여섯 편으로 이루어짐
-김학주, 「陶淵明」, 明文堂
-위키백과사전
-김창환, 「도연명의 사상과 문학」, 을유문학사
-동양고전학회, 「도연명의 생애와 작품」, 동양고전연구(학술교육원)
-손혜영, 「도연명의 생애 및 작품연구」, 성균관대학교
-한중인문학회, 「도연명의 시」, 한중인문화연구
-차주환, 「한역 도연명전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노용철, 「도연명 시에 나타난 사상연구」, 경희대 교육대학원
-김영덕, 「중국역사와 문학」, 학문사
-위안싱페이, 「중국문명대시야」, 김영사
-윤수영, 「시 '음주' 陶淵明의 詩에 나타난 人生의 意味」,
영남 중국어문학회
-홍현정, 「도연명의 전원시 연구」, 경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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