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서양중세도시의 의의
Ⅲ. 서양중세도시의 성립
Ⅳ. 서양중세도시의 발달
Ⅴ. 서양중세도시의 자유와 자치
Ⅵ. 서양중세도시의 성장원인
Ⅶ. 서양중세도시와 농업
Ⅷ. 서양중세도시와 길드
1. 8~11세기에 ‘古길드’라고 불리는 단계
2. 11~12세기에 출현한 상인길드이다
3.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에 이르는 ‘동직길드’의 시기
참고문헌
16세기 이후에 절대주의 국가가 성립할 때까지의 과도적인 형태의 왕조국가이기는 하지만 결국 13세기 말경부터 교회세력이 쇠퇴하고 봉건영주들의 힘이 약화되자 상대적으로 국왕권의 강화 현상이 나타났다. 국왕은 종전에 제후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법, 행정, 군사, 징세 등의 권한을 되찾아 중앙집권적 체제를 확립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관점으로 “아기돼지 삼형제”를 바라보면 막내가 지은 벽돌집은 강력한 중앙집권의 국가로 재해석해 본다면 영주들의 가혹한 포탈에 대해 영주를 대신한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국가에서의 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바랬을 것이다.
10세기로부터 11세기에 걸쳐 모든 이민족의 침입이 종식되고 유럽사회는 게르만민족 이동이후 처음으로 전반적인 안정을 되찾게 되었으며, 이러한 안정을 바탕으로 유럽에는 새로운 활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삼포식, 중량쟁기, 치즈, 버터, 이회토 사용 등의 농업기술 발전과, 활발한 개간으로 인구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전 유럽적인 개간과 간척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사회의 안정, 인구의 증가, 그리고 경작지의 확대에 따른 사회적 유동성의 증대는 교역과 상업의 발달을 자극하였다. 농업생산력의 증가는 잉여생산물을 낳게 하고, 이러한 잉여생산은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소규모의 지방적인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점차로 교환경제를 움트게 하였다. 이리하여 새로운 상인계층이 광범하게 형성되어 갔으며, 이들의 상업활동의 근거지 또는 중심지로서 중세도시가 또한 널리 발달하게 되었다.
중세도시는 새로 건설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고대도시의 자리나 국왕, 봉건제후 또는 주교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하여 발달하였다. 그들은 자기 영내에 도시가 발달하는 것을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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