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행정학교육의 실태
Ⅲ. 행정학교육의 수요변화
Ⅳ. 행정학교육의 교과과정
Ⅴ. 행정학교육의 학부제
Ⅵ. 행정학교육의 위기
Ⅶ. 행정학교육의 방향
1. 사회변화에 따른 행정수요의 변화에 적응하는 교육
2. 실무형 교육의 강조
3.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교육
4. 세계화에 적응하는 교육
5. 행정의 민주화 교육, 의견수렴, 갈등 조정, 협상 능력의 향상
6. 행정학과 관련한 취득 가능한 자격증 제도의 개발
Ⅷ. 결론
참고문헌
세계 행정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행정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적 지위를 누리기까지에는 모(母)학문인 정치학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엄청난 진통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유럽에서 행정학이 대두되는 과정에서는 ‘공법으로부터 이탈의 험로’(이한빈)가 있었다. 이처럼 새 학문분야가 학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언제나 피나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을 통해 대륙법 전통을 전수받은 한국의 경우 행정학이 공법의 범주로부터 이탈하는 과정은 비교적 자연스럽고 무난했다.
1950년대에 새로 소개가 시작된 행정학이론의 지적 연원은 비교적 다양했다. 우선 독일, 오스트리아계 국가학파의 관방학(官房學)의 영향과 더불어 미국의 초기 행정학 이론이 함께 수용되었다. 특기할 것은 이 기간의 행정학 연구는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 근대적 행정학을 도입한 일본의 행정학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정인흥교수이다. 그는 전전(戰前) 일본에서 대학수업을 할 때 법학의 일부로 행정학을 배웠던 정치학자였다. 박동서, 유훈 교수 등 이후 한국행정학의 큰 기둥들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한발 뒤이어 이한빈, 조효원 교수 등 미국에서 귀국한 신진학자들이 미국행정학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대체로 1950년대 중반이후 미국행정학의 도입이 급류를 탄다. 1956년 7월 미국 행정학자 리그스(F.W. Riggs)가 내한하여 중앙공무원훈련원에서 3주간 행정학에 대한 계몽적 특강을 하였다. 이것이 당시 거의 독학(獨學)에 가까운 입장에서 행정학에 관심을 쏟았던 학계와 실무계의 많은 인사들에게 신선한 지적 자극을 선사했다. 같은 해 가을 리그스교수의 재차 내한과 때를 같이하여 한국행정학회(KAPA)의 전신인 한국행정연구회가 출범한다. 학계인사 40여명과 중진공무원 40여명이 참여했고, 초대회장에는 백낙준 연세대총장(역사학), 부회장에는 신태환 서울법대학장(경제학)이 추대되었다. 고려대 윤세창 교수 등 행정법학자들도 학회창설의 주역이었다. 새 학회창설에는 학계와 실무계가 손을 잡았고, 모(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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