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운동의 정의
∙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은 어떻게 시작하였는가?
Part.2 1987년 이전의 노동운동사
∙ 이승만 정부
∙ 박정희 정부, 유신
∙ 12.12사태 이후 신군부
Part.3 1987년 노동자 대투쟁
∙ 1987년 노동자 대투쟁
∙ 의의
Part.4 1987년 이후의 노동운동사
∙ 1987년 노동자 대투쟁 ~ 1996-97 노동자 총파업
∙ 1996-97 노동자 총파업 ~ 20c
Part.5 21c
젊은 청년 전태일은 왜 분신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전태일은 분신 이전에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자신이 직접 재단사로 일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이러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정부 기관에 진정, 그리고 언론에 노동자들의 처지를 호소하였다. 하지만 국가와 언론의 반응은 싸늘하였다. 이미 언론은 박정희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고, 자신의 정책에 맞지 않는 이러한 젊은 청년은 박정희에게 있어서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국가로부터 어떠한 해결책을 찾으려던 청년 전태일은 오히려 자신이 일하던 일터에서 해고라는 결과를 얻게 된다. 직장의 해고에도 불구하고 전태일은 가두시위를 통하여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만 이 또한 무력으로 진압당하고 만다.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도 나라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탄압했던 것이다. 결국 전태일은 최후의 방법으로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무엇인가 잘못된 사회구조를 개선하려는 그를 두고 ‘노동자들의 예수’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전태일의 분신이 있고 나서 이에 자극받은 청계천 노동자들은 청계노조를 결성하게 된다. 그리고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하는데 실제로 14시간 노동에서 10시간 내외 노동이라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는다. 하지만 이 노동운동 이면에도 많은 눈물과 피가 흘렀다. 청계노조 조합원들의 노동운동 과정에서 여러명의 노동자들이 투신, 할복, 분신을 시도하였다고 하는데 얼마나 그 투쟁이 격렬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청계노조의 결성 이후에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의 감정이 다시 폭발하듯 폭발적으로 노동조합과 노동쟁의 수가 증가하였다. 1970년 한 해 동안 165건에 불과했던 노동쟁의가 이듬해 1656건으로 10배가량 증가하였다. 이와 더불어 1970년대 민주노조가 결성되었는데 대표적 민주노조로서 청계피복노조, 동일방직노조, 원풍모방노조, 콘트롤데이타노조, 반도상사, YH무역노조가 있다.
※YH무역노조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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