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Ⅱ. 민족 이데올로기: “민족협화”1. "민족협화"의 의미
2. 만주국의 민족정책
Ⅲ. 민족 이데올로기의
1. 건국정신과 만인
2. 몽고인 또는 “몽한일체“
3. 조선인 또는 부담스러운 하위 범주
4. 일본인 또는 외국인
Ⅳ. 결론
초기 만주국의 담론은 시대를 앞선 측면이 있다. 민족협화는 역사적인 만주의 이질성, 즉 수십 개 민족집단의 혼재를 반영하였다. 국제적인 도시 하얼빈의 경우, 50개 이상의 민족집단과 45종류의 언어가 혼재했다. 만주국은 오늘날 지구화시대 몇 나라의 다문화주의, 혹은 미국의 '거대한 용광로'를 연상시키는 개방성, 국제주의를 표방했다. 사해동포주의라는 수사도 구사되었다. 정부가 후원한 유명한 구세단체의 이름도 만국도덕회였다. 만국도덕회는 시와 현 지부를 만들어 상당한 강습과 문화 복지활동을 벌였다. 또한 "사해동포정신의 함양"을 위해 동자단이 학교에 만들어졌고, 소년단의 훈련을 위해 일본에서 강사가 오기도 했다. 만주국 지도자들은 협화의 정신을 실현시키는 단체인 협화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1930년대 주반에 이르러 협화회는 군과 정부의 기구로 전락, 민족집단적, 문화적, 직업적 대표의 수단이라기보다는 감시와 동원의 수단이 되었다. 만주국 시기에는 ‘민족협화’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계 당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민족협화’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내용 또는, 민족 간의 생활상·권력상의 우열이나 이들 사이의 갈등·대립·충돌 등과 관련된 내용들을 보도하고 출판하는 것을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2. 만주국의 민족정책
‘민족협화’의 성공 여부는 만주국의 식민 통치 기반의 강약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만일 ‘민족협화’가 성과를 거둔다면 만주국 내의 항일 세력의 투쟁 명분은 약화될 것이고 그들의 인적·물적 자원, 즉 항일 투쟁에 필요한 병력·식량·무기·탄약·약품 등의 수급 역시 곤란해질 터이지만, 일제의 제국주의 전쟁 수행에 따른 만주국民의 인적·물적 동원은 그만큼 수월해질 것이겠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만일 ‘민족협화’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항일 세력의 투쟁 명분은 강화될 것이고 그들의 투쟁 여건은 제고될 터이지만 만주국 내 각 민족 사이의 알력과 마찰이 증폭되면서 사회적 불안정이 야기됨은 물론이고 일본 민족 이외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식민 통치 기반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尹輝鐸, 앞의 논문, p.145.
그러나 만주국의 민족화합은 원천적으로 제한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구체적
-단행본
야마무로 신이치, 윤대석 역,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소명출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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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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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輝鐸, 「「滿洲國」의 ‘民族協和’ 運動과 朝鮮人」,『한국민족운동사연구』Vol.6,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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