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보존본인 염동준 발행의 파주 염씨 세보에 따르면 염상섭은 정유년 8월 3일(1897년 음력 8월 3일)에 서울 종로구 필운동 야조현 고가나무골에서 태어났다. 염상섭의 본명은 상섭(尙燮)이었고 그의 필명(筆名)은 상섭(想涉)이었으며 자(字)는 주상(周相), 호(號)는 횡보(橫步)였다. 주로 상섭(想涉)으로 행세했다.
조부 염인식은 태조대왕의 영정을 그리고 모시는 부서의 도감 및 역대 제왕의 영정을 모신 정3품인 통정 대부 중추원 의관을 역임했으며, 부 염규환은 전주, 가평, 의성, 예천 군수를 지낸 바 있다.
염상섭의 생애에 있어서 집안 배경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증조부때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이 집안인 만큼 염상섭은 서울 토박이라는 점이다. 염상섭이 서울 토박이라는 점은 곧 서울말을 능수능란하게 사용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말을 잘쓴다는 것은 그가 작품을 창작할 때 상당한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서울말을 잘쓰는 것은 염상섭에 있어서 상당한 자부심이었다. 창조파 두목인 김동인의 작품 「거츠른 터」를 비판하면서 경어와 서도의 방언을 혼용치 마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그가 서울토박이 말에 얼마나 큰 소설적 자부심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김윤식, 『염상섭 연구』, 1999, 서울대학교 출판부
김종균, 『염상섭 소설연구』, 1999, 국학자료원
이용남 외, 『한국현대작가론』,1997, 민지사
백철 외,『염상섭연구』, 1987, 새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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