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1. 구조적으로 바라본 의 서두
2. 새장 속의 새, ‘나’와 아내의 종속관계
3. “굿바이”- 그러나 그는 가지 않는다.
4. 분리: 근대인의 ‘운명의 상징’
5. 일과 놀이: ‘놀고 있는’ 어른에서 ‘일하는’ 어린이로?
6. ‘종생’ 을 위장한 ‘나’의 잠자기
7. 마녀가 백설에게 준 사과, 아내가 ‘나’에게 준 아달린을 먹고 잠이 들다
■ 결론
■ 참고도서
감정은 어떤 '포우즈'. (그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험이 되오? 굿바이. 위의 책, p.260.
여기서 다시 화자가 ‘나’로 설정되어 있다. 첫째 부분에서 언급한 여인 문제를 놓고 다시 자기 나름대로의 여성에 대한 인식방법을 재차 밝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전체를 다시 정리해 보면, 이 글에 등장하는 ‘나’는 작가 자신을 위장한다. 그러므로 소설의 서사를 주도하고 있는 작중화자 ‘나’와도 그 목소리를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다. 경험적 자아로서의 ‘나’와 위장된 작가로서의 ‘나’, 그리고 서사적 자아로서의 ‘나’가 각각 작용하고 있다든 말이다. 더구나 이 글 속에는 ‘나’의 진술내용을 듣고 있던 가상의 독자가 나를 향하여 던지는 충고의 말도 함께 싣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가상의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그 가상의 독자는 다시 ‘나’를 향하여 ‘그대’라고 호칭하며 화답한다. 이 극적인 진술 방식을 통해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대화적 공간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위의 책, p.260.
2. 새장 속의 새, ‘나’와 아내의 종속관계
소설 첫 부분에서 ‘나’는 자신의 방을 마음에 들어 하며 집에만 있기를 원한다. 그는 자신과 ‘방’을 동일시하며, 자신만의 방을 통하여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자신만의 도취적인 삶을 영유한다.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해지면서 나가 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즉, 내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 드는 방이 안해 방이요, 볕 안 드는 방이 내 방이요 하고 안해와 나 둘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 위의 책, p.79.
일반적으로 햇빛은 삶과 연관되어 생각된다. 환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생명의 원천이며, 세상을 속속들이 비추어 그 모습을 드러내도록 한다. 하지만 해가 들지 않는 ‘나’의 방은 분명히 삶의 공간이지만 삶의 냄새가 나지 않는 단절된 곳, 즉 세상과의 단절을 이루고 있는 음지로서 표현이 된다. 빛 없는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사물의 상은 물론이거니와 그 향과 촉각까지도. 모든 것이 희미하고 추상적인 이곳은 구체적인 현실에의 공간이 아닌 오직 ‘나’에게만 종속되고 향유되는 의식적 공간, 즉 자의식의 공간이다. 그는 자신의 방 안의 이불 속에서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쓰고 시도 많이 지’으며 이 자의식의 공간을 채워나가려 한다. 그러나 이곳은 실체가 없는 내적공간이기에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 다 -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가 없어”지며,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이 공간을 채워나가기를 반복한다.
이상 저, 권영민 편, , 뿔(웅진), 2009
이경훈,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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