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s~1900s
1910s
1920s
1930s
현대의상 발전기 1940~1949
1940s
마카오신사란?
현대의상 개화기 1950~1969
1950s
현대의상 전환기 1970~1989
1970s
1980s
일본의 군수 물자 탓으로 불가피하게 밀리터리 스타일과 퍼머넌트 헤어스타일이 보급되었다. 앗빠빠라고 불리던 간단한 양장과 몸빼가 국민복으로 강요되었다. 국민들의 의생활은 무척 가난하였고 의생활이 부족하여 색상은 국방색이나 검정색 일색이었다. 이렇게 서지 옷감이나 군복을 개조한 옷감이 대부분이던 옷감 고갈의 시대에 마카오 양복감으로 양복을 맞춰 입은 마카오 신사들이 등장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 전형적인 마카오 신사 차림의 김구 암살범 안두희
1950년 한국전쟁이 휩쓸고간 서울명동에 전국각지의 의상업을 하던 사람들이 몰려들며 “한 양장점”을 시작으로 국제 양장사 ,아리사,송옥 양장점, 버그양장점등이 개업하며 명동은 유행의 1번지가 되었다. 당시에는 특별히 모델이라는 개념이없어 유명영화배우들이 패션모델로 활약하였다.
미군 PX나 암시장을 통한 군수품 밀수품들이 범람하며 군수담요로 만든 담요코트 낙하산천으로 만든 낙하산 블라우스가 유행하였다.
남학생들은 군복에 염색을하여 개조하여입거나 패드를 넣어 어깨를과장하기도 했는데 곧 여학생과 일반인들사이에도 유행하게되었다.
1956년 영화’자유부인’에서 나온 벨벳소재의상이 큰유행을 하여 벨벳의상이 대유행을 하였다. 이것때문에 벨벳옷감수입으로 인한 사치의증가로
정부에서는 ‘벨벳옷감제한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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