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무로마치 막부의 성립과 슈고 세력의 성장
1)무로마치 막부의 성립
2)슈고 다이묘
-가마쿠라 막부의 슈고와 무로마치 막부의 슈고
-고쿠진의 슈고 가신화
3)슈고 다이묘와 막부의 관계
3.무로마치 막부의 기구와 법제
1)삼관과 사직
2)지방기구
3)겐무 시키모쿠
4)막부의 재정수입과 군사조직
4.일·명 무역
1)왜구
2)감합무역의 실태
5.향촌제와 소의 성립
-소의 형성과 역할
6.막부의 쇠퇴
1)막부의 쇠퇴
2)오닌의 난
7.무로마치 시대의 문화
-금각사, 은각사, 다도문화, 수묵화
슈고란 가마쿠라 막부 때부터 지방관을 부르는 말이었는데, 무로마치 막부를 연 쇼군 다카우지가 도입한 반제령이 슈고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슈고는 점차 국내의 무사를 자신의 사적 가신단으로 편성하여 영국 지배 체제를 지배해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슈고를 ‘슈고 다이묘’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북조의 통일을 달성한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쇼군의 권력 확고하게 하기 위해 유력한 슈고 다이묘들을 제압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와 그의 처인 히노 도미코는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겨 막부의 재정은 극도로 궁핍해졌고, 그것은 곧 막부의 권위 실추로 이어져, ‘오니의 난’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오닌의 난은 슈고 다이묘의 몰락과 센고쿠 다이묘의 탄생, 즉 전국시대의 개막을 초래하였다.
2.무로마치 막부의 성립과 슈고 세력의 성장
1)무로마치 막부의 성립 과정
남북조 시대의 갈등과 항쟁은 교토에 머무르지 않고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던 중 1338년 기타바타케 아키이에(北畠顕家),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 등 천황을 따르던 무사들이 사망하고 1339년에는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마저 사망함에 따라, 점차 형세는 남조에 불리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다카우지(足利尊氏)가 버티고 있는 북조가 남조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조는 요시노라는 천혜의 요새에 자리 잡아 지역적으로 우세했고 천황의 정통성 측면에서도 천황을 급조한 북조보다 유리했다. 더욱이 실권자인 아시카가 씨 내부의 분열과 항쟁으로, 북조는 끊임없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카우지는 1338년 북조로부터 쇼군에 임명되어 무로마치 막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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