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지성의 His story
3. 차범근-박지성, 공통점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 좀 보내주세요”
어린 시절 부터 축구선수에 대한 열망
어려운 가정 환경에도
“아빠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 좀 보내주세요”
전학간 축구부는 이미 해체
포기 않고 필드 하키부에 들어가 운동감을 익힌 뒤
중3때 축구부가 있는 경신중으로 전학
“혜성처럼 등장” 이 아닌 “준비된 등장”
“남보다 늦은나이에 시작한 축구, 하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훈련에 훈련의 연속이었지만 남보다 몇 배로 연습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1972년 2월, 고등학교에 졸업하기도 전인 19살의 나이로
최연소 한국 축구 국가대표에 발탁
이는 그가 축구시작 4년 만에 일이었다.
영양실조“고기 한번 실 컷 먹고 싶다”
“ 학창시절 하루는 운동을 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영양실조였다. 격렬한 운동을 하면서도 제대로 먹질 못했으니 당연했다.”
“어려웠던 시절 항상 배가 고팠고 고기 한번 실컷 먹는 게 소원이었다.
친구에게 도시락을 얻어 먹으며 꿈을 키웠다.
국가대표가 된 이후 비로소 그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그저 오직 축구만 생각”
“추운 새벽이면 행여나 누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 훈련을 하고 있을까 봐 조바심 치며 고려대학교 언덕을 오르던 일
샌드백처럼 매달아 놓은 공으로 헤딩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앓아 눕던 기억
이런 것 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
“난 오직 축구만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세계무대에 도전해야 한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출전 이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하기까지
무려 32년간 월드컵 무대 출전 좌절
차범근은 1974,78년 월드컵 무대 코앞에서 번번히 좌절하자
“이대로는 안 된다. 세계무대에 도전해야 한다”
명색이 한 나라의 국가대표가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1978년 12월 다름슈타트에 입단하지만-
1경기만 뛰고
공군 복무 6개월 기간을 더 채워야 한다는
정부 명령으로 한국 소환
6개월 추가 공군 복무 후 다시 독일행
“공백기간 공원에서 독일 동네 청소년과 볼을 찼지만 개의치 않았다.
꿈을 향한 도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다”
결국 1979년 7월 프랑크푸르트와 입단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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