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1922년의 흑우회
Ⅲ. 1922년의 한인단체
Ⅳ. 1922년의 동경동맹회
Ⅴ. 1922년의 코민테른
Ⅵ. 1922년의 태을교
참고문헌
흑도회는 구성원의 다양한 성향으로 인해 조직적 활동을 펼치지는 못했으나, 동우회 간부진의 참여로 노동문제 및 기관지 발간 등에 높은 의욕을 보였다. 우선 흑도회 활동방향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동우회선언’을 주목할 수 있다. 1922년 2월 4일《朝鮮日報》에 동우회 명의의「전 조선노동자 제군에게 고한다.」라는 글에서 이들은 앞으로 “일본의 주요 사상단체와 제휴하여 노동대학 설립, 잡지『同友』의 발행 등 노동운동을 전개하려하며 이제부터는 고학생 및 노동자의 단순한 구제기관이 아니라 직접적인 계급투쟁기관이라는 사실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김약수, 박열 등 11명이 연서한 이 선언문은 동우회를 친목적 노동단체에서 계급투쟁 기관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표방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연서자인 김약수, 김사국, 박열, 원종린, 임택용 황석우 등은 이미 흑도회에 가입한 상태였으며 홍승노 등도 관련인물이다. 이들이 밝힌 사업계획 중 노동대학 설립은 大杉榮의 ‘平民大學’을 염두해 둔 것으로 보이지만, 기관지는 흑도회의『黑濤』지 발간으로 현실화되었다. 하지만 동우회는 내부진통을 거쳐 순수 노동단체로 남아 있다가 1923년 5월 제 4차 메이데이행사 이후 자연 소멸되었다. 때문에 ‘동우회선언’은 동우회 명의로 발표되기는 했지만, 노동단체의 한계를 절감한 간부진들이 흑도회에 가입 후 향후 활동방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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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덕 외 2명 : 1920년대 이후 일본·동남아지역 민족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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