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제정러시아(러시아제국)의 역사
Ⅲ. 제정러시아(러시아제국)의 공동체의식
Ⅳ. 제정러시아(러시아제국)의 나폴레옹침공
Ⅴ. 제정러시아(러시아제국)의 대한반도정책
Ⅵ. 제정러시아(러시아제국)의 한러밀약설(한국과 러시아의 밀약설)
1. 한․러 밀약설의 배경 :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
2. 한․러 밀약과 청의 의도
1) 조선 - 러시아
2) 청의 의도
3.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의도
1) 1880년대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의 의도
2) 러시아의 의도
4. 한․러 밀약설의 내용
1) 1차 한․러 밀약설(1885년 6월 16일) - 협판교섭통상
2) 2차 한․러 밀약설(1886년 8월 9일)
3) 3차 한․러 밀약설(1888년 7월 13일) - 한․러육로통상장정 조인
Ⅶ. 제정러시아(러시아제국)의 한인이주
Ⅷ. 제정러시아(러시아제국)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Ⅸ. 결론
참고문헌
1918년의 평화 회담은 동유럽의 독립과 새 국경선을 주었지만, 복잡한 민족적, 영토적 문제로 인하여 동유럽 제국은 상호간의 분쟁과 충돌을 계속하였다. 민족주의 기운이과열되어 가는 도중에 이들 나라의 분열상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독일과 소련이었다. 독일과 소련은 양차 대전간에 동유럽의 영토적,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해 큰 위협 세력으로 나타났다. 독일과 소련이 양차 대전간에 동유럽을 그렇게 쉽게 통제할 수 있었던 근거는 서유럽의 고립주의 노선이 동유럽이 중요한 지지 세력을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 지역의 심각한 정치적 문제, 인종 문제, 사회 경제적 취약함이 양 국가로 하여금 더욱 손쉽게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동유럽 상호간의 국제적 분쟁으로 말미암아 독일과 소련에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을 상실하였다. 또한, 내부적으로 생겨난 인종적 적대감은 외부적 압박 때문에 더욱 가중되어 국수주의와 극단적 대외 강경론의 추세가 생겨났다. 결국 이 시기의 유일한 공통된 추세적 범위의 이념은 반 유태인 주의 밖에 없었고, 동유럽은 유태인을 학대함으로써 독일로부터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다. 동유럽이 양 대전간에 상호간의 경제적 교류를 소홀히 하고, 독일과의 개별적 관계에서만 이득을 얻으려고 한 것은 또 하나의 오산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가 맺은 소협상국 체제는 강국에 대항한 것이 아니라 헝가리에 대항한 것이었고, 경제적 부문에서나마의 협력은 별 성과를 가지지 못하였다. 비교적 산업화의 수준이 높았던 체코슬로바키아는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자유로운 통화를 받아내려는 방식을 더 좋아했다. 1930년대 동유럽 국가가 독일의 주도권이 강화되고 있음을 실감하고 서유럽으로부터의 차관 중지에 절망하고 있는 가운데, 서유럽은 팽창하는 공산 러시아에 대응하여 독일의 협조를 기대하여 실질적으로 동유럽의 독립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 김재섭(1994), 제정 러시아의 대한반도정책 연구, 경성대학교
- 유·게·스메르틴 외 1명(2009), 제정 러시아 시대의 한국학 연구와 교육의 연관성, 한국교육학회
- 한정숙(1996), 제정러시아 제국주의의 만주·조선정책, 한국역사연구회
- 황영삼(2000), 시베리아 철도부설과 제정러시아의 동아시아 정책, 한국외국어대학교러시아연구소
- M.카르포비치 저, 이인호 역(1983), 제정러시아, 탐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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