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사회] `공각기동대`에 그려진 사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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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술과 사회] `공각기동대`에 그려진 사회의 모습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번식 욕구가 있다. 자신과 유사한 형태의 개체가 가능한 많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 이러한 욕구가 단순히 유전적인데 그치지 않고, 사상적인 영역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즉,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진리라 믿는 바에 동감하는 사람 사상적 자식 - 이 더욱 늘어나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단방향, 혹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행한다. 예술은 대표적인 단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의 경계를 명확히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단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므로,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의 소통은 미디엄을 통할 수 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해석을 낳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스트 모더니즘이 대두되면서, 그나마 붙들고 있던 예술의 경계는 해체가 더욱 가속화되어, 미디엄으로 예술을 규정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길가의 돌 하나, 풀 한 포기도 창작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감상자의 입장에서 예술 작품이 될 수도 있으며, 창작자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 전혀 예술이 아니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해체 일변도로 치달아 어느 것이 예술이고, 어느 것이 예술이 아닌지 말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고수해서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 질 수 밖에 없다. 어떤 예술이 더 좋은 (better) 예술이고, 어떤 예술이 더 나쁜 (worse) 예술인지 직관적으로 전제할 수 있다면, 예술의 경계에 대해 무리하여 규정짓지 않더라도, 예술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