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근대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  [서양근대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
 2  [서양근대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2
 3  [서양근대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3
 4  [서양근대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4
 5  [서양근대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5
 6  [서양근대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서양근대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나폴레옹의 출생과 청년시절
통령정부
제정의 수립과 몰락, 그리고 러시아 원정
백일천하와 워털루 전투
세인트헬레나
결론
본문내용
나폴레옹의 출생과 청년시절

나폴레옹은 1769년 8월 15일 코르시카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섬, 제노바령에서 프랑스령으로 넘어감
섬 아작시오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그는 남달리 병으로 골골거렸는데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가 임신 마지막 몇 달 동안 산악 지역을 전전하며 피난생활을 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건강이 좋지 못했다.
나폴레옹 가계(家系)에 대한 공식적인 검증 결과에 따르면,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 귀족 가문의 후예이다. 가문의 연원은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코르시카에 거주한 지는 200년이 넘었다. 그의 어머니 마리 레티지아 라몰리노는 토목기사의 딸이자, 아작시오 대성당 참사회원의 조카딸이었다. 그녀의 집안도 연원이 깊다고 할 수 있으며, 14세기 이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에서 명성을 쌓은 콜 알토 가문과는 친척관계였다.
어머니 레티지아는 열네 살에 결혼해 자녀를 열 셋이나 낳았는데 조제프, 나폴레옹, 뤼시엥, 엘리자, 루이 홀란드의 왕. 나폴레옹 3세의 아버지
, 폴린, 카롤린, 제롬 등 여덟 형제만 살아남았다.
나폴레옹은 제1통령에 이어 황제가 된 뒤에도 적들이 그를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코르시카 사람이다.” 라고 운운할 때 가장 화를 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코르시카 출신이라는 점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임을 자처했다. 모든 권력은 전적으로 자신의 칼과 프랑스 국민의 표에 의해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1784년 나폴레옹은 파리 왕립사관학교 입학을 허가하는 루이 16세의 서명이 들어있는 허가장을 손에 쥐었다. 이 학교는 프랑스식 육군사관학교인데 나폴레옹은 이곳에서 경멸의 대상이었다. 이는 후에 혁명의 중요한 심리적 동인의 하나가 된다.
학창시절의 나폴레옹은 조금 반항조의 젊은이였다고 한다. 훗날 파리에서 나폴레옹을 도운 로라 페르몽 후에 쥐노 장군의 아내가 된 인물로 그녀의 어머니는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지아의 친구였음
은 그가 사관학교내의 속물근성에 대해 반감을 격렬히 토로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나폴레옹은 대개 2~3년 만에 치르는 것이 보통인 졸업시험을 1년 만에 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체에서 42등이었다. 워낙 탁월한 실력 덕에 그는 중간단계를 뛰어넘고 가장 좋은 친구 드 마지와 함께 바로 발랑스에 있는 라페르 포병연대 소위로 임관될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전문적인 교육과 실무적인 훈련의 효과는 훗날 툴롱과 이탈리아 원정에서 여실히 발휘하게 된다.




통령정부
참고문헌
펠리스 마크햄 저, 이종길 역, 『나폴레옹』, 2001년, 길산
이저 월로치 저, 차재호 역, 『나폴레옹의 싱크탱크들』, 2001년, 홍익출판사
로저 프라이스 저, 김경근, 서이자 역,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 2001년, 개마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