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6·7세기 백제와 일본의 관계
III. 일본 문화 속에 나타난 백제 문화의 성격
1. 후네야마 고분 출토품
2. 왕인박사
3. 동대사 본존과 금당
4. 법륭사
5. 백제 관음상
6. 칠지도
7. 도쿄 속의 백제
IV. 맺음말
6세기는 한국 내 정세의 전환의 세기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고구려-신라의 연합과 이에 대립되는 백제-가락이라는 관계는 이미 지난 세기 중엽부터 파괴되고 고구려에 대립되는 신라, 백제의 접근이라는 형세로서 내려오다가 6세기의 중엽부터는 다시 이 관계가 파괴되어 신라에 대립하는 고구려, 백제의 접근이라는 판국의 큰 변화를 보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정세의 계기는 결국 신라의 가락국 정복(532년)과 그 서쪽에로의 적극적 진출로 말미암아 초래된 것이었고, 신라는 이로써 그가 앞으로 예견하는 한국 통일의 역사적 전제를 쌓아 나갔다.1)
백제는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따라 공주로부터 그 도읍을 다시 538년에 부여로 옮기였고, 이 시기를 전후해서부터 많은 영토를 신라에 탈취 당하게 되었다. 종전에 신라에 비하여 훨씬 강국이었던 백제는 3국 중에서 가장 약한 나라로 되어 갔다. 낙동강 구의 금관 가락국은 532년에 신라에 병합되고, 어느 정도 잔명을 부지하고 있었다고 보이는 낙동강 중류의 대가야국(고령)마저도 562년에는 신라에 의하여 종국적으로 정복되고 말았다. 일본 열도 내에서 가장 큰 세력을 부식하고 있었던 백제와 가락의 고국들이 이와 같이 쇠퇴하거나 망해갔다는 사정은 이 세기에 한일 관계가 전환을 초래하게 되니 큰 요인의 하나로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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