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

 1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1
 2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2
 3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3
 4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4
 5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5
 6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6
 7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7
 8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8
 9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9
 10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10
 11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11
 12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12
 13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1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한국사]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해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Ⅰ서론

500년 역사의 조선 왕조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쫓겨나 불행한 삶을 마감했던 왕이 3명있다. 어린 나이에 즉위 했다가 숙부 수양대군에게 쫓겨났던 노산군(단종), 포학하고 방탕했다는 이유로 중종반정을 만나 쫓겨났던 연산군, 그리고 이 글에서 논증해보고자 하는 인조반정과 광해군이 그들이다. 쫓겨난 뒤에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 되고 철저하게 외면당한 광해군은 조선 후기의 역사책이나 개인 문집에서 ‘혼군’이나 ‘폐주’라 불리어졌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과연 그는 문제가 많은, 어리석은 군주였을까?
17세기 조선은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울 만큼, 큰 위기를 맞게 된다. 7년 동안 이어진 임진왜란으로 인해 나라는 피폐해졌고 민심은 흉흉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붕당의 조짐으로 어지러웠고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는 형국이었다. 밖으로는 명이 쇠퇴해가고 북방에서 여진의 후금이 강성해지며 국제 관계 또한 급변해갔다. 이시기의 군주가 바로 광해군이다. 그는 왜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어루만지고 무너져버린 국가의 기반을 재건해야했다. 실제로 그는 여러 개혁정책을 펼치려 하였고 왕권강화를 단행해 왕권의 기반을 다지려고 하였다. 그리고 국제 관계에 있어서 오늘날 ‘양면외교’, ‘실리외교’라 일컬어지는 명과 후금사이의 외교 정책으로 조선사회의 안정을 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1623년 서인등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인해 역사의 혼군으로 격하되며 패배자가 되고 만다.

참고문헌

한명기. 『현명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광해군』. 2000. 역사비평사.
한명기. 「폭군인가 현군인가-광해군 다시보기」.『역사비평 44호』. 1998. 역사비평사
이희근. 「쿠데타로 들어선 고립화의 길」.『주제로 보는 한국사』. 2005. 고즈윈
이이화. 「국가재건과 청의 침입」.『한국사 이야기12』. 2000. 한길사

하고 싶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