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혁명의 시작
혁명의 이념은 계몽사상가인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에 의해서 약 반세기에 걸쳐 배양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루소의 문명에 대한 격렬한 비판과 인민주권론이 혁명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프랑스 왕권은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완성한 절대주의 체제에 의해서 여전히 국왕친정과 신권이론(神權理論)을 받들고 국가외 인민 위에 군림을 계속하였다. 신권왕정 밑에서는 모든 국민이 단순히 국왕의 신하에 불과하다. 그 위에 소수의 귀족·성직자들만이 별도의 특권 신분을 구성하고 국민의 90%를 차지한 평민층의 근로와 납세에 기생하면서 우아하고 무위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루이 16세(1774∼1792)의 정부는 미국 독립혁명을 구원한 군사비 때문에 재정궁핍에 빠졌다. 재정총감 칼론은 1787년 2월에 명사회(名士會)를 소집하고, 특권신분에게도 과세하는 임시지조(臨時地租)를 제안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귀 ·성직자들은 국왕의 사법관료 아성인 파리고등 법원과도 결맹하고 고등법원이 가진 법령심사의 권한을 이용해서 왕정 고문부의 재정안(財政案)에 저항하였다. 이 왕권 내부에서 투쟁하는 사이에 재정총감 칼론도 브리엔도 실각하고 1788년 8월에 네케르가 재차 재정총감으로 기용되었다. 그는 고등법원의 요구를 받아들여, 1614년 이래 열리지 않았던 전국 3부회를 다음해에 소집할 것을 국민에게 확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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