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의 당왕조는 현종(685~762) 말년에 발발한 안사의 난 이후, 찬란한 문화로 세계제국으로까지 불리던 번영은 사라지고 번진(藩鎭)의 할거로 통일국가의 체모를 잃게 되었으며, 중앙에서도 환관의 전횡과 관료들의 당쟁으로 말미암아 쇠망의 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관료․군대의 수는 늘고 국가 재원은 위기에 빠졌으며 이에 무거운 조세 부담에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도망하여 호족의 소작인이 되거나 산림에 숨어 군도(群盜)로 변하였다. 따라서 중앙의 통치력이 약한 지방에서 이 군도를 조직화한 대규모의 농민폭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의 말기의 당은 정치적 하강의 시대였던 만큼 그러한 시대적 위기로 말미암아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고원(高遠)한 철학체계보다는 생생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사색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이미 선종의 시대에 돌입한 중당(中唐)으로부터 이때에 이르면 더욱 성황을 이루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고문(古文)이 쇠퇴함과 아울러 고시(古詩)제작의 의욕도 쇠퇴하여 시단(詩壇)의 주류는 다시 금체시(今體詩)의 형식으로 되돌아와, 대구(對句)로 구성하며 운율의 규칙까지도 있는 율시(律詩)에 가까운 변려문(騈儷文)이 출현하였다. 최치원의 문장은 이러한 변려문체를 계승, 발전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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