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연구목적
2. 본 론
⑴ 한양의 역사 및 유래
⑵ 한양이 조선의 도읍이 되기까지의 배경
① 태조의 한양천도 목적
② 천도에 관한 다양한 의견
- 한양천도의 반대세력의 입장
③ 수도로서의 입지결정
⑶ 태종의 한성(漢城) 환도
3. 결 론
⑴ 연구목적
定都 600년을 맞이하는 서울은 그 역사와 전통에 있어서 세계 어느 도시에 못지않은 유서 깊은 도시이자 조선시대 이래 한 나라의 수도로써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河眞娥. 1994. 「서울한강유역의 지역형성과정」
우리의 사고 속에서 서울은 자연스레 하나의 도시 라기 보다는 조선시대 이후부터 지금의 대한민국까지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고유명사화 되어 버렸다. 한 정당과 현재의 대통령의 당시 대선 공약이었던 ‘행정수도이전’이라는 논쟁의 주제는 이러한 고유 명사화된 서울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것을 이유로 행정수도이전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지, 일반도시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아보고자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다. 서울(과거의 한양)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와 조선왕조 개창 이후 한양이 조선의 도읍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배경 및 그와 연관된 다양한 정치적 사건들을 연계로 조선의 도읍-한양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2. 本 論
⑴ 한양의 역사 및 유래
서울지역의 지명은 삼국시대부터 문헌에 보인다.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이 일어나기 전
에는 지금의 서울지역이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의 3한 중 마한에 속하였던 것
은 여러 문헌자료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마한 54소국 중 어느 소국이 지금 서울지
역에 위치하였던 것인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는
초기부터 지금 서울지역의 명칭이 보인다. 즉 『삼국사기』 백제본기중 시조 온조왕기사(記
事)를 보면,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아들 비류․온조 형제가 졸본 부여에서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남행하여 한산에 와서 부아악에 올라 거주할 땅을 보았으며 비류는 미추홀(지금의
인천지방)로 가고,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 하여 백제를 건설하였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보이
는 한산, 부아악, 위례성이 모두 지금의 서울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온조왕 기사 중
에는 또 13년(B.C. 6)에 왕이 한수 남
이병수. 1979. 「高麗時代의 硏究」
하진아. 1994. 「서울한강유역의 지역형성과정」
서정규 1989 「한양천도에 풍수지리설이 미친 영향」
이원명. 1984. 「한양천도 배경에 관한 연구」
서적 : 이경재 : 한양이야기
김용국 : 「서울전도(奠都)의 동기와 전말」 『향토서울』 제1호
박경룡 : 한성부연구
참고사이트 : 서울육백년사 : http://seoul600.visitseo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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