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본론
1. 김동인의 생애 소개
2. 자연주의
2-1 감자
2-2 명문
3. 탐미주의
3-1 광염소나타
3-2 배따라기
Ⅲ.결론
김동인은 ‘동인문학상’(소설가 김동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문학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적어도 한번은 접해보았을 ‘감자’, ‘배따라기’등을 쓴 작가이다. 김동인의 몇몇 작품을 읽으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반도덕적이고, 쾌락주의적인 것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조는 이러한 작품의 성격이 자연주의와 탐미주의로 연결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왜 저런 작품을 썼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김동인에 대해 연구하던 중, 이것이 김동인, 즉 작가의 삶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동인의 생애와 그의 삶이 자연주의, 탐미주의적 작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다시 말해서, 그의 삶이 그러한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보고자한다.
Ⅱ. 본론
1. 먼저 김동인의 생애를 요약해보겠다. 김동인은 190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평양교회의 초대 장로로 활동한 바 있고, 이런 연유로 김도인은 어려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대부호의 차남(후실 소생)으로 출생한 김동인은 소년 시절을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한 것 없이 유아 독존적으로 자라났다. 1921년 김동인은 기독교계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숭실중학교에 입학하나 성격과목에 대한 불만이 계기가 되어 중퇴하고, 1914년 도일하여 동경학원 중학부를 거쳐, 이듬해 메이지 학원 중학부 2학년에 편입한다. 김동인의 도일 유학의 본래 목표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으나,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그의 자존심과 빈번한 영화감상, 탐정소설과 문학작품 탐독으로 점차 예술, 문학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당시 그가 가장 경모한 작가는 톨스토이뿐으로, 그를 제외한 문학 특히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우선 깔보고 들었으며 빅토르 위고까지도 통속작가라 경멸할 정도였다. 1917년 메이지 학원 중학부를 졸업한 김동인은 부친 사망으로 일시 귀국, 이듬해 4월 결혼을 하나, 예술에 대한 동경과 문학에의 욕망을 버릴 수 없어 재도일, 천단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미술학교 입학은 그림을 배움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미학에 대한 기초 지식과 그림에 대한 개념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 김동인의 문학적 경력은 1919년부터 시작된다. 이 해 2월, 그는 주요한, 전영택 등과 함께 동인지 ‘창조’를 사재로 발간, 창간호에 저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한다. 3월에는 3.1운동의 파문으로 귀국, 아우 동평의 부탁으로 격문을 초하여 주었다가 출판법 위반 혐의로, ‘6개월 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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