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태어난 1917년엔 유럽에서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이 3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전장을 하늘과 물밑으로 확장 시켜 영국 상공에서는 공중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대서양은 잠수함작 전의 무대가 되고 있었다. 1916년 9월에는 영국이 솜 전투에서 최초 로 탱크를 사용해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했다. 박정희의 생일보다 한달 빠른 1917년 10월17일,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한강에서 인도교 준공식을 가졌다. 이 다리는 그로부터 43년 7개월 뒤 혁명군을 이끌 고 서울로 진격하는 박정희의 주요 기동로가 된다.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 아버지 박성빈과 어머니 백남의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축복과 기다림 속에 탄생하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박정희는 어머니가 태기를 느끼는 바로 그 순간부터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박정희를 임신했을 때 백남의의 나이는 45세로 아이를 낳기엔 상당한 고령이었고, 게다가 이미 결혼했던 큰누나 박귀희도 같은 시기에 임신을 하고 있었다. 모녀가 동시에 출산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끄러움과 당혹감을 느낀 백남의는 뱃속의 박정희를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간장을 들이마시고, 밀기울을 끓여 마시고, 버들강아지의 뿌리를 달여 마신 뒤 정신을 잃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디딜 방아의 머리로 자신의 배를 눌러버리기도 했는데, 그것마저 무위로 돌아가자 그제서야 어쩔 수 없이 유산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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