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는 일본의 무사도(사무라이)에 관한 발표를 준비했다. 처음에 이 주제를 택했을 때는 칼을 쓰는 사무라이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사도가 일본사회에 끼친 영향이 아주 방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 사회와 문화 곳곳에 ‘일본의 혼’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무사도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을 보며, 일본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키워드로써 ‘무사도’가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무사도의 영향 때문에 그것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이러한 무사(도)의 역사와 의의 및 그 영향 등에 관해서만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Ⅱ. 역 사 원광대학교 일본어교육연구회, 일본 대중문화의 이해(서울 : 제이앤씨, 2002), pp. 37-48.
- 일본 역사, 그 속의 무사
1. 고대 (4~12세기) - 헤이안 시대, 지방의 지배자이자 귀족의 사병으로 고용된 무사
4세기에 천황이 일본을 통일하고 중국대륙이나 한반도로부터 여러 문물을 도입해서 나라의 기초를 쌓았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직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체제가 아니었고, 천황은 유력한 호족의 협력에 의해 정치를 행하였다. 그리하여 힘이 센 호족이 나오면 그 지위가 바뀔 우려도 있었다.
645년에 천황을 누르고 독재정치를 하였던 소가씨를 타도하고 처음으로 천황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세웠다. 또한 지방에는 국사(國司 : 현재의 도지사 역할을 함)를 보내어 다스렸다. 토지나 백성은 호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나라의 것이 되고, 백성은 한 사람당 2,300㎡의 토지를 나라로부터 받아 일정한 세금을 내고 사용하며, 국방에도 종사하였다.
하지만 천황 중심의 제도는 8세기말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여 귀족이 토지를 사유해서 장원으로 만들어 갔다. 귀족은 토지와 백성을 지배하며 부를 취하여, 힘을 가지고 섭정ㆍ관백(천황이 충분히 정치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황대신 정치하는 자) 정치를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일본의 정치체제는 귀족정치로 바뀌었다. 그리고 794년 수도를 나라에서 쿄오또로 옮긴 후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이 문화는 어디까지나 수도 또는 수도부근에 한정된 것이었다.
귀족들이 지방을 돌보지 않고, 정치를 내팽개친 채 도시에서 사치스런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이에 정치는 문란해져 갔고 특히 지방은 무법지대화 되어 지방마다 무력집단이 생겨나 사실상 이들이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무사(武士)이다.
그런데 수도의 치안이 악화되고, 이미 군대조직이 붕괴직전에 있었으므로 무사들이 대신하여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무사들은 어디까지나 사병으로서, 국가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 귀족에게 고용된 상태에서 수도의 방비를 담당하였다.
이 귀족이 정치한 시대를 헤이안 시대라 한다. 이 시대는 794년부터 무사 타이라 키요모리가 정권을 잡은 1159년까지 이어진다.
2. 중세 (12~17세기) - 봉건사회 성장기 무사들
귀족에게 고용되어 있던 무사는 각 지방에서 백성을 직접 지배함으로써 힘을 쌓아서 12세기 후반에 정권을 잡았다. 이후 19세기까지 약 700년간 무사는 계속 정권을 잡았다. 천황은 완전히 형식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다. 무사의 동량(棟梁 : 우두머리)은 정이대장군이 되고(형식적으로 천황으로부터 임명된다.), 막부(幕府 : 무사의 정치체제)를 설치하여 각 지역의 무사 우두머리가 자기 지방을 지배하였다.(초기에는 천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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