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로는 후대 역사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
-최승로의 시무상서
최승로는 경주출생의 귀족, 육두품 최은함의 아들이었다. 신라가 항복할 때 부자는 경순왕을 따라 고려에 귀순하여 일찍부터 문장, 학문계통의 경력을 쌓았다. 왕명을 받아 글을 짓거나 고려의 학문연구기관에서 활동했다. 9살에 최승로는 영특하여 고려조정에 알려졌고 3년 뒤 왕건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젊은 나이에 관리를 시작하였다. 국내에서 학업을 한 국내파인 최승로는 뒷날 광종의 맹목적 중국 문물 도입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989년(성종8년) 신라계 세력의 대표적인 최승로의 사망을 계기로 경주출신귀족들의 세력약화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개국공신계열 혹은 개경인근의 근귀지방호족계열이 점차 정치적 지배세력으로 대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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