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오리건 주립대에서 중거리 육상선수 Phil Knight와 육상코치 Bill Bowerman의 만남, 즉 Phil의 비즈니스 통찰력과 Bill의 혁신적인 디자인의 만남이 나이키의 출발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운동화였다. 기록 향상을 위해 운동화 산업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사업 명제였다. 뜻이 맞던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1964년, 각각 500달러씩을 투자하여 Blue Ribbon Sports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유명한 신발 회사인 일본 스포츠 브랜드 Onisuka Tiger Company와의 제휴로부터 본격적인 스포츠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Onisuka Tiger Compnay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보따리 행상에 불과했던 나이트와 바우어만은 상점하나 없이 집 차고에 제품을 쌓아두고 대학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트럭장사를 했다. 해프닝 속에 시작된 나이키의 출발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첫 해에 8천 달러의 판매와, 단지 250달러의 이익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필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우수한 성능을 가진 운동화를 연구하던 이들에게 행운은 금방 찾아왔다. 가볍고, 튼튼한 신발들은 운동선수들의 성적에 좋은 영향을 줬고, 매출도 점점 증가하여, 1969년에 이르러 매출액은 30만 달러에 달했다. 우연히 와플 굽는 틀에 고무합성물을 붓는 식으로 신발 깔창 제조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승리의 여신 ‘니케(Nike)'에서 ‘나이키’라는 미국식 명칭이 탄생하였다는 브랜드·로고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미술 전공 대학원생 Caroline Davison이 개발한 ‘Swoosh'로고는 니케의 날개이자 승리의 상징인 'V’를 표현하고 있는데, 개발비용이 단 35달러였다.
※ 나이키 로고의 변천사
이 때부터 ‘Nike'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Swoosh'로고를 가지고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1972년이었다. 1979년 나이키는 업계에서 최고였고, 스포츠시장 매출액의 50%를 점유하고 있었다. 또한, 1974년부터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실력 있는 육상 선수들을 위한 지원은 점차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1979년 미국의 800에서 10000미터까지의 모든 기록 보유자들이 나이키를 신은 사람이었을 만큼 나이키는 최고의 이미지로 대변되었다. 1970년대는 나이키를 세계스포츠 시장을 리드하는 최고 기업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이키는 신발뿐 아니라 스포츠 용품전반을 취급하는 기업으로 확장하였고, 40개국 이상의 해외시장으로 진출하여, 1984년에는 최고의 매출액인 약 9억2천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나이키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신발전문회사에서 스포츠용품전문회사로 라인을 확장하면서, 신발에 대한 전문성을 놓쳐버렸고, 시들해진 조깅붐은 판매고를 하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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