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천황의 라디오방송으로 전쟁의 중지를 알렸다. 이리하여 1931년에 군부가 시작한 전쟁은 15년만에 끝이 났다.
일본이 항복하자 연합국군총사령부(聯合國軍總司令部:GHQ)의 최고 사령관으로 미국의 맥아더(1880-1964)원수가 와서 일본에 진주하고, 오키나와와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는 미국이 직접 통치했다. 맥아더원수는 일본정부를 관리하고 일본정부에 명령을 하여 군국주의를 버리고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제도를 차례차례 개혁해 나갔다. 우선 극동국제군사재판소(極東國際軍事裁判所)가 설치되어 전쟁중의 정부·군의 수뇌자(首腦者)들은 전쟁범죄인으로 재판을 받았다. 민주화에서는 치안유지법이 폐지되었고 20세 이상의 남녀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어 여성들의 선거권도 실현되었다. 경제의 민주화에서는 군부와 함께 전쟁을 추진했떤 미쓰이(三井)·미쓰비시(三菱)·스미토모(住友) 등의 재벌을 해체하고, 독점금지법(獨占禁止法)을 만들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농지에 대해서는 부재지주(不在地主)와 넓은 토지를 소유한 지주의 토지를 소작인에게 나누어주는 농지개혁(農地改革)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농촌과 지주와 소작인의 봉건적인 관계는 사라지게 되었고 자작농(自作農)의 노력으로 농업의 생산이 크게 늘었다. 또한, 교육의 민주화로는 교육기본법(敎育基本法)을 만들고 교육제도는 6·3·3·4制로 하는 한편, 의무교육을 이제까지의 6년간에서 9년간으로 늘렸으며 남녀공학으로 바꾸었다.
그 후, 1946년(昭和 21年)년에 나라와 정치의 기본이 되는 새로운 헌법이 일본국헌법(日本國憲法)으로 공포되어 이듬해 5월 3일에 시행되었다. 이 헌법은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 국민이 주도권을 갖는 것(主權在民), 전쟁을 지양하는 것(平和主義),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人權尊重)의 세 가지를 원칙으로 하고, 전쟁 이전의 주권자였던 천황을 국가의 상징으로 하였다. 그밖에 노동자의 단결건과 파업권을 인정하여 소위 '건강하게,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生存權)'도 규정했다.
전후의 일본은 국토가 황폐화되고 산업도 위축되어 국민생활은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도시사람들은 식량이 부족했고,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는 점점 치솟았다. 또한 해외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인도되어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쳤다. 그러나 이러한 종전 후의 어려운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의 생활재건노력이 이어져, 이후 생활이 점차 안정되었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사상·언론·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한 문화활동이 활발해졌고, 개인의 해방과 민주화를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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