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정치・경제・사회적 위기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4.19혁명이라는 대중적 저항으로 표출된다. 4.19혁명은 50년대 원조경제의 위기와 이에 따른 대중들의 경제적 궁핍화의 심화와 이승만정권의 부패성, 비민주성, 폭력성에 대한 정치적 불만 등 의 조건 위에서 3.15부정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선도적 투쟁과 일반 대중들의 광범한 참여로 이승만 독재의 막을 내리게 하였다. 그러나 4.19 이후 사회운동의 급속한 확산에 위기를 느낀 군부와 보수세력 등은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대중들의 요구와 지향을 억누르고 말았다.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권은 50년대 말, 60년대 초 원조경제체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경제에 대한 광범위한 국가개입을 의미하는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여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이 시기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경제개발정책 을 통해 한국은 본격적인 대외 지향적 산업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대외 지향적 산업화 전략은 그 이전까지의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을 일거에 뒤바꾸는 결정적인 정책적 전환점이 되었다.
국가는 이 시기부터 '수출', '성장', 그리고 '공업화'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수단은 막대한 '외국자본'과 '저렴한 노동력'이었다. 정부는 수출 지향적 공업화 전략을 취하면서 거의 무한정에 가까운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수출 산업을 육성코자 하였으며, 이러한 공업화 전략은 저임금과 단순작업에 기초한 노동집약적 경공업의 획기적인 발전을 의미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성장전략은 노동에 대한
전태일을 사랑하는 모임 J.L.O- http://cafe.daum.net/jlo
청송녹죽문학회- http://cafe.daum.net/limja
조영래, ‘전태일 평전’, 1990, 돌베개.
김청석외, ‘80년대 한국사회’, 1986,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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