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8․15광복 이후 중공업 중심의 북한과 소비재 위주의 경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남한으로 국토 분단을 겪게 된 데다, 기본적으로 자원과 자본, 기술축적이 극히 미약한 상태에서 수출산업을 주축으로 하여 산업구조의 개편을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경제개발계획 기간의 초기(1962~1973)에는 수입대체산업 부문과 경공업 중심의 수출산업부문의 급속한 확대․개편을 성취시켰으나 그후 실시된 중화학공업부문의 수출산업화는 국제적으로 자원민족주의의 대두로 인한 원료가격의 앙등, 스태그플레이션을 비롯한 국제경기의 후퇴, 국내적으로는 소비재산업의 미성숙으로 인한 초과수요인플레이션 구조, 전통적 부문과 현대적 부문의 불균형발전에 기인한 이중구조의 심화, 그에 따른 저급노동력의 과잉공급과 고급노동력의 과소공급현상 등 수많은 문제점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구나 1970년대 후반 역점을 두었던 중화학공업화는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중화학공업화율을 1961년의 22.3% 수준에서 1977년에는 42.3%로 제고시켜 놓았지만, 내용면에서 볼 때는 노동생산성이 낮은 장치산업에 치중되었고, 방위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화학 공업부문이 세계시장에서 이미 어느 정도 공급과잉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 화학공업․섬유공업 등 광범한 분야에서 석유를 기초원료로 사용하는 수입원료․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로 재편되었다는 사실이 난관이었다.
•1980년대에는 이러한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조정 등 산업구조의 재편이 추구되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합리화에 노력하였다. 산업구조의 고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1차산업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지고 2․3차 산업의 비중이 증대하여 선진공업국의 구성을 보인다. 그러나 산업부문간 불균형 성장, 수출산업과 내수산업간의 격차, 대외의존도의 심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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