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당시 30대 기업그룹 가운데 지난 1년간 사실상 부도가 나 부도유예협약 또는 협조융자 대상이 된 그룹이 기아(당시 순위 8위), 한화(9위), 한라(12위), 동아건설(13위), 진로(19위), 고합(21위), 해태(24위), 뉴코아(25위), 한일(27위), 신호(30위) 등 10개에 달하였고 나머지 많은 기업그룹도 거의 유사한 경제적 곤란을 겪어왔다. 이들 기업 그룹의 전반적인 부실화는 국내 금융기관에 막대한 부실채권을 발생시키면서 금융위기와 외환위기를 초래하였고 결국 현 경제위기의 기본 원인이 되었다.
그 동안 대기업 제도로서 한국의 재벌이 지닌 모순과 질곡이 점점 확대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실패가 지금처럼 분명하게 드러나기 직전까지도 재벌제도 자체가 정당하게 문제시되거나 재벌이 개혁의 대상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물론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도 재벌 총수의 뇌물수수에 대한 사정작업을 실시하였고 업종전문화 제도나 사외이사 제도 등 재벌규제적 정책을 모색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재벌규제 프로그램들은 최고 권력자의 정책의지가 제대로 담보되지 않았고 지속적인 추진력을 결여하여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났다. 이 시기 재벌규제가 불철저하게 실행된 것은 김영삼 정부의 집권 후기가 경기하강 국면으로 규제 프로그램이 실행될 여건이 형성되지 않은 탓도 있으나, 그보다는 김영삼 정부가 재벌제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었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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