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장인가, 개혁인가?)
(2.갑오개혁 시기나누기)
(3.갑오개혁의 기본정신과 기본체제)
(4.개혁관료와 일본세력의 동상이몽)
(5.신,구 개혁관료의 견해대립)
(6.개혁기간의 정치체제 수립과 제도화 과정)
(7.지방제도와 관료제의 개혁)
(8.신분제 폐지)
(9.교육개혁과 인권보장)
(10.경제체제 개편)
(11.토지 및 지세제도)
(12.농민들의 요구와 관료들의 실현)
(13.갑오개혁의 평가)
< 2.유길준 (兪吉濬,1856~1914) >
※참고자료
19세기 후반 한국의 근대개혁운동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1894년1월 초 농민전쟁의 시작에 이어 6월 말 청일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출범한 새로운 개혁정부는 조선국가의 근대적 개혁을 수행했다. 이를 당시에는 대경장(大更張)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빌려와 일반적으로 개설서나 연구서에서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 했다. 그런데 ‘경장(更張)’이란 말은 조선의 제도와 문물이 해이해져서 현실과 어그러질 때 이를 고쳐서 긴장하게 하는 것으로, 사회적∙정치적으로 부패한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하는 일을 말한다. 여기서 경장의 의미는 전통적인 제도의 개혁에 국한되어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전통적인 봉건국가의 틀 내에서 운영상의 모순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국가를 근대국가 체제로 전환시켜나려는 것이므로 ‘근대개혁’이라는 개념을 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 ‘갑오개혁(甲午改革)’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으므로 갑오개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 근대 국가의 형성과 갑오개혁」, 역사 비평사, 왕현종
「서유견문」, 경인 문화사, 유길준
http://my.dreamwiz.com/jabcho89/ko-data/cocept/te-text/702/t-7058.htm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