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강화도다. 강화도는 경기도 북서부의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합류하는 하구에 위치하는 섬으로 면적 293㎢, 남북길이 30km, 동서길이 12km로 우리나라 제 5위인 섬이다. 강화도의 기후는 해양성 기후의 특징을 띠어 같은 위도의 내륙지방보다 따뜻하고 남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탕나무, 동백나무 등의 난대식물이 자생한다. 육지 못지 않게 도로가 잘 정비되어 강화읍을 기점으로 도로가 사방으로 통하며 1970년에는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염하에 강화대교(694m)가 가설되어 육지와의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강화도는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는데 이는 강화도에서 발견되는 많은 구석기 유물과 신석기 유물을 보면 알 수 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마리산 첨성단과 단군의 세아들이 쌓은 삼랑성의 유적은 상고시대 특히 고조선의 문화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강화로 개칭하고 현을 두었는데 이때 비로소 강화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디었다. 몽고의 제2차 침입 직전인 1232년(고종 19) 거려는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 강도라고 칭하고 몽고에 대한 항전을 계속하다가 1270년에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고려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금속활자의 주조, 팔만대장경의 조판, 삼강청자의 제작 등이 이루어진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개경 환도 이후에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고려 조정과 몽고에 항쟁하다가 진도로 남하하였다. 근대에 와서 강화도는 개항을 요구하는 제국주의 열강과의 격전지가 된다. 이는 강화도가 한성으로 통하는 수상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었는데, 강화도는 이로 인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가 된다. 1886년(고종3)에 병인양요가 일어나서 프랑스 함대가 강화성을 함락하고 약 1개월 동안 머무르다가 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에게 대패하자 강화도에서 철수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1871년 신미양요 때에는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던 미국함대가 계속 북상하여 초지진을 점령하였다. 육로로 북상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던 어재연 이하 모든 장병은 끝까지 싸우다가 광성보 전투에서 전원이 전사하였다. 1874년에는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 초지진과 포대가 일본 군함의 포격을 받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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