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시오니즘의 발단과 전개
Ⅲ. 양차 대전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심화
⒜ 영국의 삼중외교
⒝ 미국과 영국의 팔레스타인 문제 개입 노력과 그 반발
⒞ UN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독립선언
Ⅴ. 결론
그러나 이 ‘약속의 땅’에 대한 사모의 정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신조였다. 순례자로서 예루살렘에 가는 유대인은 끊임없었지만, ‘유대인 국가재건’이라고 하는 사상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또 유대 교와 유대 민족은 동일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민족’이라는 것은 민족 자결권 등, 근대의 정치사상 문맥에서 서술되고 있는 ‘민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온의 땅’으로 귀환해 그곳에 유대인 국가를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한 시오니즘 운동은 유대인의 존재, 더욱이 ‘약속의 땅’과 유대인과의 연결을 근대적인 민족주의 사상의 옷으로 포장하여 정치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갔다.
유대인에게 이전의 팔레스타인이라 함은 모세가 고대 이집트로부터 유대민족을 탈출 시키고 찾아 나선 하느님이 약속해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 야훼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팔레스타인 지역’은 일반적으로 제 1차 세계대전과 1948년 사이에 영국이 위임통치지역으로 행정을 담당했던 지역을 가리킨다.
료지, 다테야마. 팔레스타인 그 역사와 현재, 가람기획, 2002.
하경근. 현대중동정치론-PLO를 중심으로-, 태광문화사, 1985
최창모. 이스라엘사, 대한교육사주식회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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