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1. 장재의 생애와 학문 경향
(1) 생애
(2) 장재의 학문 경향
2. 장재의 서명에 관한 고찰
(1) 서명에서 보여지는 만물일체설
(2) 정이천과 주자 및 퇴계의 서명에 대한 해설
(3) 서명에 대한 양시의 비판
Ⅲ. 결론
⑴ 생애
張載(1020-1077)의 字는 子厚이다. 대대로 大梁에 살았으나 뒷날 鳳翔, 邵縣, 橫渠鎭등을 옮겨 살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橫渠先生이라고 불렀다. 어릴 때 孤兒가 되었으나 스스로 학문과 인격을 닦았고 兵書에 관한 책을 즐겨 읽어 功名을 세울 결심을 하기도 하였다. 18세에 范仲암을 찾아가 글을 올려 國事를 의논했고 범중암이 그 재주를 인정하여, 병사에 관한 학문을 그만하고 中庸을 연구하도록 권장하였다. 그는 범중암의 충고를 받아들여 中庸을 위시하여 佛書, 老子 및 六經에 이르기까지 탐구하지 아니한 바가 없다. 그 뒤 그는 京師에서 지나면서 먼 친척인 程顥, 程伊와 道學을 토론하며 서로 존경했다. 정치에 나아가 夏, 殷, 周의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을 하기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병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을 학문연구에 정진하였다.
⑵ 학문 경향
장재는 孔․孟의 학설을 최고의 요구사항으로 삼았으며, 한편으로는 佛家와 老莊의 학설을 배척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또 그 영향을 받았는데, 철학사상에 있어서 老佛의 우주관을 배척하였다. 또한 주돈이의 태극도설이나 소옹의 先天說, 정이의 이기설도 취하지 않고, 독자적인 설을 세웠다. 그것은 ‘太虛’라는 개념이었는데, 그는 ‘태허’로써 우주를 설명하였다. 즉 태허는 무형의 氣이며, 氣의 응집과 발산으로 이루어지는 음과 양의 理氣가 태허의 실질이며 속성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논리에서 태허가 곧 기이며, 기는 곧 태극이라는 기일원론을 주장하였다.
『정주철학원론』 장윤주, 1992. 이론과 실천
『송명이학사1 』 候外廬 외. 옮긴이/박완석
『중국철학사 』 勞思光
『퇴계철학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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