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작품 분석
1. 안민가
1-2. 해석상의 문제
1-3. 작품의 핵심정리 및 노래의 의미구조
1-4. 주술적 성격
2. 청산별곡
2-1. 창작 배경
2-2. 해석상의 문제
2-3. 작품의 핵심정리 및 노래의 의미구조
2-4. 각 연별 해설 및 감상
Ⅲ. 맺음말
「안민가」와 「청산별곡」은 ‘향가’와 ‘고려가요’라고 하는 각각 다른 장르에서 높은 수준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의 창작 배경은 그 기록이 실린 문헌을 중심으로 하여 「안민가」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배경설화를 중심으로 당시 시대상과 창작 동기를 살펴보고, 「청산별곡」은 『고려사』에 실린 기록에 따라 작품이 창작되던 사회적 배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각각의 작품의 분석을 통하여 맺음말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Ⅱ. 작품 분석
1. 안민가
1-1. 창작 배경 - 배경설화를 중심으로
「안민가」는 충담사가 지은 10구체 향가로서 「삼국유사」권2에 실려 전한다. 노래를 지은 유래는 다음과 같다. 경덕왕 23년(765) 3월 3일 왕이 귀정문(歸正門)에 올라 신하들에게 거리에 나가 훌륭한 스님을 한 분 모셔 오라 하였다. 신하들이 한 명승(名僧)을 모셔왔으나, 왕은 자기가 찾는 스님이 아니라 하여 돌려보내고 다시 모셔온 분이 바로 충담사였다.
왕은 그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지은 스님임을 알고 “안민가(安民歌)”를 지으라 하였다. 이에 충담사가 노래를 지어 바치니 왕이 기꺼이 여겨 왕사(王師)에 봉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다고 한다. 이 때 그가 지은 향가 “안민가”는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각각 자기 본분을 지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는 소박한 내용으로, 유교 사상이 짙은 노래이다.
향가를 지은 신라 사람들은 당시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에는 불교가 귀족 불교로서 각광을 받았고, 화랑도를 통한 심신 연마를 중요시했던 만큼, 향가를 지은 사람들은 주로 불교의 승려와 화랑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향가 작품이 불교를 배경 사상으로 삼은 데 비해, 이 작품만이 유일하게 민본주의(民本主義)라는 유교적 통치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승려가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유교적인 이상 정치에 대해 노래했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쓰여질 당시에는 각종 천재지변이 민생(民生)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신하의 도전으로 왕권이 위협받는 등 정치적으로도 위기 상황이었다. 그래서 경덕왕은 충담사로 하여금 향가를 짓도록 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따라서 예술성보다는 교훈성이 강한 작품이 되었다.
「안민가」를 배경설화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三國遺事』 卷二 「紀異」 第二條에 실려 있다. 「안민가」의 배경설화는 이 조목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두 이야기가 하나의 조목 밑에 수록되어 전한다. 이는 별도의 의미와 목적을 가진 채 기술된 것이 아니라 경덕왕의 치리와 관련하여 발생되는 일련의 사건을 순차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언듯보면 ① 경덕왕과 충담사의 이야기
․박노준, 『고려가요의 연구』, 새문사, 1990.
․이성주(1998), 『고려시대의 가요』, 민속원.
․이문원, 「의 지도 연구」,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2
․한창민 편저(2004), 『문학 I (고전문학)』, 교육마을
․김준오 외 3명 공저(2005), 『한국문학개론』, 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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