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과 유럽의 신문역사비교
2. 각 나라별 신문
< 유럽의 방송 >
기술 표준 확립의 필요성
이종 플랫폼 사업자의 공존과 경쟁 구도
기존 채널 수
유료 TV를 이용해본 경험
정부정책
디지털 위성 방송
디지털 케이블 방송
디지털 지상파 방송
< 유럽의 광고 >
유럽 아닌 유럽, 보수파 영국 광고
'성' 표현의 천국, 유럽
유럽 광고시장 신경향 - PPL광고 확대
2004년 유럽인쇄광고의 두드러진 특징
1) 한국 신문의 역사
근대신문이 발행되기 전부터 ꡐ조보(朝報)ꡑ또는 ꡐ기별[奇別]ꡑ이라 불리는 관보성격의 필사신문이 있었다. 이 전근대적 신문 형태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 또는 15세기 무렵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보는 승정원에서 발표하는 자료들을 각 관청의 기별서리(寄別書吏)들이 손으로 베껴서 서울과 지방의 각 관청과 양반층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조보의 내용은 관보적인 성격으로 국왕의 동정과 관리의 임면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일반 사회기사의 성격을 띤 것도 함께 실었다. 조보는 한국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와 《한성주보(漢城周報)》가 발행되기 전까지 존재하다가 1894년 정부가 정식으로 인쇄된 《관보(官報)》를 창간하고, 이듬해에 승정원의 공사청(公事廳)을 폐지하면서 없어졌다.
한국 최초의 근대신문은 1883년 10월 31일에 창간된 《한성순보》이다. 이 신문은 정부기구인 박문국(博文局)에서 발간했으나, 당시의 개화파들이 국민에게 외국의 사정을 널리 알려 개화사상을 고취시키려는 데 큰 목적을 두었다. 《한성순보》는 창간 이듬해에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폐간되었으나, 1886년 1월 25일에 다시 《한성주보》를 창간하여 88년까지 발행하였다.
한편,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은 1896년 4월 7일에 서재필(徐載弼)이 창간한 《독립신문》이다. 이 신문은 한글전용과 띄어쓰기를 단행하여 그 후의 민간신문 제작에 큰 영향을 주었고, 민중계몽과 자주독립사상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독립신문에 자극을 받아 1898년에는 《일신문》, 《뎨국신문》, 《황성신문(皇城新聞)》 등의 일간지들이 뒤를 이어 창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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