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론] 양란기 문인들의 현실의식 비교 -정훈과 박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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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시가론] 양란기 문인들의 현실의식 비교 -정훈과 박인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2.본론
-생애
-대표작품

-작가의식
3.결론

본문내용
●정훈
정훈은 임진왜란와 병자호란의 혼란기에 전라남도 남원지방에 살았던 인물로 자는 방로(邦老), 호는 수남방옹(水南放翁)을 사용했다. 고려 때 대제학인 정현영의 후손으로, 평생 동안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 이괄의 난 때에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모병하여 출동하였고, 정묘․병자호란 때에는 두 아들을 출정시켰다. 그는 20수의 시조와 5편의 가사를 남겨 17세기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집안은 高祖 때 경제적 이유로 하여 한양에서 남원으로 낙향한 목락한 집안이었는데, 정훈 당대에 이르러서도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대로 청빈했던 정훈의 집안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생활의 궁핍으로 하여 한양에서 시골인 남원으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정상적 학문의 길을 걷지 못하였으나 항상 학문에 대한 열의를 버리지 않았다. 이런 형편은 당대에 와서도 풀리지 않았다. 즉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이어져 그는 어릴 때부터 산림에 묻혀 자연과 벗하여 손수 自耕으로 생활을 영위했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ꡐ亂 중에도 부모를 봉양할 것이 없으면 손수 어망과 그물을 짜서 어린 노비로 하여 하루 세 번 고기를 잡게 하고 혹은 친히 가서 그것을 구하기도 하였다ꡑ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비록 노비를 거느리고 있기는 하지만, 때에 따라 스스로 그물을 짜야만 하는 한미한 향반이었다.
참고문헌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5』, 지식산업사, 1997.
류해춘,「16.7세기 사대부가사 연구」, 경북대학교 석사논문, 1985.
이성원,「사족층의 분화와 정훈의 시가」
구수영, 「노계 박인로 시가 연구」
http://www.kanggo.net/%7Epooh/munhak/gasa/noohang.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