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역사와 현재의 분쟁 상황
3. 관련국의 영유권 주장 – 중국 , 일본
4. 앞으로의 전망
5. 센카쿠/댜우위다오 분쟁이 한중일에 미치는 영향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주장
日 실효적 지배 강화
中 일본의 실효지배 타파 위한 정책 강력 추진
01/ 1372년 처음으로 중국 명나라의 선원들에 의해서 댜오위다오 발견
→일본은 1884년에 댜오위다오를 처음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의 각종 역사학적 기록을
보면 청나라 시대에 청의 영토에 편입된 사실이 나와있다.
명조 영락 원년(1403년) ‘순풍상송(順風相送)’에 ‘댜오위다오’의 옛 이름 ‘댜오쉬(釣魚嶼, 조어서)’ 라는 명칭이 등장하며 “푸조우(福建)와 류큐(琉球)를 연결하는 해상항로의 지표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댜오위서(釣魚嶼)를 지나고 황모서(黃毛嶼)를 지나 적서(赤嶼)를 지나노라면 볼거리가 너무 많아 눈이 모자랐다… 구미산(古米山)까지도 여전히 유구에 속하더라”
- 천칸(陳侃)의 ‘사류구록’(1534년)
02/ 중국 영토였던 이 군도를 1895년 청일 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이
무주지(無主地)라며 자국 영토로 강제 편입시킨 것은 불법이며, 당연 무효.
→1895년에 이루어진 일본 각의의 결정은 비밀리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국이 이의 제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이의제기가 없어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는 일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영국 런던에서 간행된 ‘The Empire of China, with Its Principal Division’(1790),
일본 동경에서 간행된 ‘일본∙만주국연감지도’ 등에서 조어도의 중국 명칭을 번역하여 표기하였다.
따라서 무주지가 아닌 중국 영토로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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