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작가론]격변기에 산출된 강호미학의 정점 - 고산 윤선도론
2. 고산의 생애와 그의 시대
3. 격변기가 낳은 자연미의 드높은 경지
4. 시조사의 흐름과 고산
그는 젊어서는 당대의 권력가 이이첨과 대결하고 노년에는 송시열과 예송논쟁에 적극 뛰어들 만큼 열정과 혈기를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또 해남 윤씨의 종손으로서 거대한 부를 치밀하게 관리하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공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면모들 뒤켠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세련된 감수성의 미적 반영물이 시조 작품인 바, 그에게 있어 시조는 세상과 겪는 갈등과 지향, 자연과의 교감 및 심미적 흥취를 담아 내는 주요 통로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그의 시조는 기존의 흐름을 하나로 집약하는 저수지이자 새로운 물결로 향해 가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후의 시조사의 물길은 어디로 향하는가? 주지하듯 18세기 이후 시조는 담당층의 대폭적 확대와 더불어 존재방식 및 미적 스펙트럼이 다면적으로 분화되어 가니, 시조사가 그 물길을 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 고산의 작품들이 놓여 있는 셈이다.
다소 의아한 일이지만 새로운 시조사의 개막을 알리는 징표의 역할을 하는 『청구영언』에는 고산의 작품이 실려 있지 않다. 그의 작품은 『해동가요』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하는데, 「어부사시사」의 경우 작품 하나 하나가 모두 독립된 노래로 변형되어 있어 그간에 있었던 세원의 흔적을 실감케 해준다. 『해동가요』의 편찬자 김수장은 고산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이분의 가법(歌法)은 탈구청고(脫垢淸高)하여 내가 이것을 본즉 가까스로 만장봉을 오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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