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대중문화
1987년 6월 10일.
그 날의 민주항쟁이 열어놓은 정치적, 문화적 공간은 90년대 문화의 토양이 되었다.
6월 항쟁을 통해 대중문화의 성격과 문화상황의 변화를 살펴보자.
1. 80년대 문화 특징
폭력으로 권력을 탈취한 군사 정부의 억압적 통치 VS 그에 맞서는 투쟁적 저항의 논리
언론통폐합 - 문화 영역의 권력의 완전 장악
대중문화에 대한 사전.사후 검열 강화 - 공안관련 법정 장치로 문화예술 억압
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문화영역에 대한 독점자본의 영향력이 확대됨
3S정책에 맞물려 향락문화가 범람하고 산업화됨
이러한 80년대 문화상황은 대중문화와 민중문화의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대 중 문 화
민 중 문 화
제도권의 문화
운동권의 문화
지배의 문화
저항의 문화
보수의 이데올로기
진보의 이데올로기
대중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문화
민중의 능동성을 담보한 문화
개인주의, 도피의 출구
공동체와 참여의 통로
외세와 제국주의의 문화
전통과 민족주의의 문화
매스미디어 시스템
소집단, 소규모매체, 불법매체
2. 1987년 6월 민주 항쟁 속으로
공화국은 중앙정보부같은 정보통치기관이 판을 치던 5공화국의 말기쯤인 1987년 1월 14일에 물고문으로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대통령 선거를 직접선거와 간접선거 중 어느 것을 채택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뜨겁던 때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큰 파문을 몰고 왔다. 그 파장은 추모대회와 평화대행진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라는 범국민적 기구를 탄생시켰다. 순결한 한 대학생을 고문으로 죽여놓고서도 발뺌을 하는 그 부도덕성이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이런 흐름에 위기를 느낀 당시 정권은 4월 13일, 대통령 직선을 위해 법을 고치는 문제 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는 이른바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더욱 큰 분 노를 느끼면서 불같이 일어났다. 호헌반대 여론이 각계각층으로 번지면서 교수, 교사, 시민 단체, 예술인, 연예인 등이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나섰다. 그러던 중에 6월 9일 연세대 생 이한열군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그 동안 마음으로만 지 지를 보내던 시민들도 거리로 나섰다. 6월 10일,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후보 로 추대하던 그날, 전국에서는 "독재타도","직선제 쟁취"의 함성이 온종일 메아리 쳤다. 6월 26일에 있었던 평화대행진의 날에는 전국에서 1백 80여 만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또한 항의의 표시로 자동차는 경적을 울리고,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종 을 쳐댔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자 마침내 6월 29일 노태우 대통령후보는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의"시국 수습을 위한 8개항"을 선언하였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빛나는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6월 민주항쟁은 진정한 민주화 시대의 발판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3. 6월 항쟁의 문화적 영향
정치권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킴 - 직선제 개헌 성취로 민주주의적 진적이 이뤄지기 시작
금지곡해체, 검열완화조치로 대중문화와 민중문화의 대립구도의 경계선이 무너지기 시작 - 민중문화담론이 운동권의 대중적인 호응을 얻는 계기

분야